자동차 부품용 반제품을 생산하는 인천의 중소 주물업체 G사. 이 회사 L사장은 지난달 거래처인 완제 부품업체 사장으로부터 "단가를 3% 더 내려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L사장은 "원자재 값이 너무 올라 힘들다"고 했지만 "우리도 납품하는 처지라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되돌아 왔다.

그는 "5cm짜리 자투리 용접봉도 버리지 않고 쓰고 있다"며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중소 주물업체들이 최근 갖가지 악재가 겹치며 '블랙 서머'에 직면하고 있다. 2003년부터 시작된 국제 원자재값 상승세가 멈출 기미조차 없는 상황에서 품귀현상까지 빚고 있기 때문이다. 또 원가를 낮추려는 원청업체의 공급가 인하 압력은 강도가 더 세졌다. 작업장 온도가 최고 40도를 넘어서는 대표적 3D 업종이라는 이미지 탓에 외국인 노동력마저 구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 형편이다.

10일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주물제품의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 수입선철(갓 생산한 철궤)의 국제가는 t당 최고 480달러(중국산)에 이른다. 조합 관계자는 "이 가격은 주물업체들이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수입선철의 대체재로 업체들이 많이 쓰고 있는 국산 고철가격도 t당 35만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1% 상승한 상황이다.

이마저도 쉽게 구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최근 생산설비를 확충한 제강회사들이 고철을 대량 선점하고 있는 데다 추가로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고철 유통업체들이 비축물량을 늘리는 탓이라는 게 조합의 분석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안정세를 보였던 부자재 값까지 덩달아 오르고 있다.

유옥섭 경인주물공단 이사장은 "중국이 3월부터 거푸집 재료인 규사 수출을 금지해 값비싼 국산 규사를 써야 하는 실정"이라며 "거푸집 성형에 필수인 포프릴 알코올도 바이오연료 제조용으로 부각돼 값이 40%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인력난은 갈수록 태산이다.

근로자의 20%가 외국인인 T사 관계자는 "외국인들까지 떠날까봐 일부러 야간 잔업을 만들어 월 150만원 이상을 맞춰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주물업계는 이처럼 제조원가가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급가에 제대로 반영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서병문 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업계가 '을'의 입장이다 보니 지난 10년간 원가는 100% 이상 오른 반면 공급단가는 고작 26% 오르는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대로 가다간 자동차 조선 기계 등 국가 주요산업의 원천인 기초 부품산업이 2~3년 안에 붕괴될 수 있다"며 "대책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

◆용어풀이

○주물(鑄物)=철이나 합금 등을 녹여 모래나 금속으로 만든 주형(鑄型) 속에 넣고 중력이나 원심력 등을 이용해 원하는 모양으로 굳혀서 만든 금속제품.자동차 조선 항공 기계 등 전통산업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산업에 필요한 기초부품의 10~30%가 주물방식으로 제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