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이 노부유키 전 소니 회장(69)을 가장 적절히 표현한 수식어가 아닌가 싶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하고 사교적인 그는 분명히 보수적인 일본 경영계에선 튀는 경영자다.
1995년 소니 사장 취임식장에서 한 기자가 선배 사장들에 대한 평가를 묻자 "선배들의 업적을 존경하지만,결코 참고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 같은 자신감으로 그는 적자에 허덕이던 소니를 창립 이래 최고의 실적을 내도록 탈바꿈시켜 소니 역사에 전설적 경영자로 자리매김했다.
소니의 디지털화와 네트워크화를 적극 추진해 미래의 성장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는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1960년 소니에 입사한 그는 1962년 스위스 지사로 발령이 나 1968년 파리 지사 근무까지 약 10년을 유럽에서 일했다.
일본에 귀국해선 오디오 사업부장을 맡다가 1989년 이사,1994년 상무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1995년엔 14명의 선임 이사를 모두 제치고 파격적으로 제6대 소니 사장으로 발탁돼 화제가 됐다.
당시 소니는 연간 3000억엔의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는 사장에 취임하자 마자 번쩍이는 아이디어로 바이오PC 베가TV 등 신제품을 히트시켰다.
그 결과 1998년 2000억엔이 넘는 흑자를 일궈냈다.
자신감이 붙은 그는 디지털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게임·영화산업 등에 활발히 진출한다.
당시 세계 언론은 '소니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에서 세계 IT(정보기술)산업의 패권을 잡으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2000년 6월 오가노리오 전임 회장의 뒤를 이어 소니 회장에 취임하면서는 '디지털 드림 키즈(Digital Dream Kids)'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소니의 디지털화와 네트워크화를 주도했다.
그러나 시대를 너무 앞서 간 탓일까.
이데이의 활발한 영토 확장,특히 소프트웨어 부문에 대한 집중 투자는 기존 주력인 전기·전자부문의 실적 악화를 초래했다.
그는 결국 2005년 자의반 타의반으로 소니 경영 일선에선 물러나고 소니미국 사장이던 하워드 스트링거 현 회장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지금은 액센추어의 모리 마사루 회장 등과 함께 작년 9월 설립한 컨설팅회사 퀀텀리프(Quantum Leap)의 대표이사로 정력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벤처회사 대기업 투자펀드 등으로 구성된 회원조직체 '클럽 100'을 만들어 '미래의 소니'를 꿈꾸는 벤처기업 육성에 열성이다.
디지털 시대 개방적 사고를 강조하는 그는 신세대 트렌드를 읽기 위해 지금도 젊은 가수들의 콘서트를 즐겨 찾는다.
오랜 유럽 생활로 와인 애호가이기도 한 그는 칠레산 '몬테스 알파M'을 좋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