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한 한국 영화계가 7월부터 큰 전환기를 맞는다.

정부 주도로 국고 출연금과 영화관 모금 등을 통해 4천억 원에 달하는 영화발전기금을 조성, 한국영화 발전에 투자하게 되며 영화 스태프들도 일반 산업체 노동자들처럼 주 66시간 노동, 4대 보험 가입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영화제작현장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 같은 변화는 일반 국민이나 관객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내용일 수 있지만 생산과 소비로 나뉘어 있는 영화산업의 생산 부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써 영화의 최종 소비자인 관객에게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영화발전기금 4천억 원 조성…투명한 운용이 관건

지난해 정부가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사전조치로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발표하면서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영화발전기금 조성과 이를 활용한 국내 영화산업 육성책을 발표함에 따라 7월부터 영화발전기금을 모금하게 된다.

올해 7월부터 시작해 2014년까지 국고 출연금 2천억 원, 영화관 모금 2천억 원 등 총 4천억 원을 조성하게 되며 2007년 1천147억 원, 2008년 1천295억 원, 2009년 260억 원, 2010년 260억 원, 2011년 260억원, 2012년 260억 원, 2013년 260억 원, 2014년 258억 원을 단계적으로 조성한다.

문화관광부는 이를 위해 지난 1월 영화발전기금 설치를 골자로 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으며 이 법률 제23조 2항에 따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기금의 관리ㆍ운용을 맡게 된다.

문화부 관계자는 "한국 영화산업이 현재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별도의 재원 조성을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영화발전기금을 조성, 운영하게 됐다"면서 "양질의 한국영화의 안정적 제작과 유통을 지원하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계 안팎에서는 영화발전기금 조성을 위한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이 민간사업자인 영화관으로부터 입장권 수익의 3%를 징수하도록 돼있기 때문에 극장측의 집단 반발 내지 입장료 인상 등의 후유증을 우려하기도 했으나 일단은 별다른 잡음없이 시행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정부의 방침이고 법률로 규정된 이상 따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면서 "어차피 기금이 영화발전을 위해 투자된다면 그 수익이 나중에 다시 영화관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CJ CGV나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주요 영화관들이 영화발전기금 납부를 위해 입장료를 눈에 띄게 인상하지는 않았지만 할인혜택을 줄인다거나 서울ㆍ수도권에 비해 크게 낮았던 지방도시 입장료를 '정상화'시키는 방법 등으로 사실상의 인상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국고 출연금 2천억 원을 포함해 4천억 원에 달하는 영화발전기금이 조성되면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숙제도 영진위는 안게 됐다.

최근 일부 영화제작사에서 제작비가 부적절하게 유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 혈세가 포함된 영화발전기금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간다면 국민적 반발을 살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영화발전기금에는 국민의 세금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만약 집행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다면 일부 영화제작사에서 제작비 유용 의혹이 불거진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될 것"이라며 "기금운용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반드시 담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산업 노사 단체협약 발효…주 66시간 노동 등 시행

지난 4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이 합의한 '2007 영화산업 노사 단체협약'이 7월부터 본격 발효된다.

이 협약이 발효되면 촬영, 조명, 연출, 제작 등 각 부문 영화 스태프들도 일반 산업현장 근로자들처럼 최저임금 보장, 격주 임금 지급, 주 66시간 노동, 4대 보험 가입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돼 그동안 노동법 등 사회안전망의 테두리 바깥에 있던 영화제작현장에 큰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제협과 영화노조가 합의한 단체협약은 영화제작업의 특성을 감안해 월 2회(격주) 급여 지급, 1주 최대 66시간 근로시간 및 1일 기준근로시간에 최대 15시간까지는 별도 합의없이 연장 가능하도록 했다.

또 사용자측은 1일 근로시간이 8시간을 초과하거나 1주 40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와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야간 근로와 휴일 근로의 경우 통상 시간급의 50%를 가산해 지급해야 하며 근로시간이 사측 사정으로 1주에 40시간이 안되거나 기타 촬영이 중단됐다 하더라도 스태프들의 직급별 시간급에 48시간 금액 이상의 주급액을 지급하도록 정해 무분별한 촬영 지연을 방지해야 한다.

양측은 이 같은 단협안이 발효되면 일부 스태프의 임금은 현재 통상 수준보다 대략 50~60%의 인상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임금상승이 고스란히 영화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과도한 영화제작비 상승이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와중에 이 같은 내용의 단협이 본격 발효되면 영화제작비의 추가적인 상승이 불가피해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차승재 제협 회장은 "단협 내용을 놓고 작품 10개 정도를 모아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제작기간 15주에 제작비 30억 원 정도 규모의 영화를 본다면 1억5천만 원 정도의 제작비가 상승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촬영횟수를 보다 타이트하게 조절하고, 권력화된 집단으로 인해 과도하게 책정된 인건비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할 수도 있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시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 회장은 이어 "지난 10년간 한국영화가 성장 위주로 발전해오면서 어떤 불법적인 토대위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인식 조차 없었다"면서 "단체협약에 따른 권리 보장과 함께 책임도 한층 강화돼 효율적인 작업 진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전문가들도 영화 스태프들의 합리적 근로체계 구축을 골자로 한 이번 단협안이 단기적으로는 제작비 상승 등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영화제작현장의 불합리한 체제를 개선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영화제작 관행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