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노동 환경 의약품 등 7개 분야에서 추가 협상을 공식 제의해왔다.

추가 협상 범위는 노동 환경 등 예상되던 수준에 그쳤으며 당초 우려했던 자동차 개성공단 등은 제외됐다.

그러나 이달 말 협정문 서명까진 보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과연 그 전에 협상의 마무리가 가능할지 주목된다.

17일 정부에 따르면 미 무역대표부(USTR)는 15일 밤 12시(현지시간)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해 자국의 '신(新)통상정책' 내용을 반영한 새로운 협정문안(legal text)을 제안해왔다.

미국은 이달 30일 서명 전에 새 협정문안에 대한 추가 협상을 마치기 위해 오는 21~22일 서울에서 양국 수석대표 간 협의를 열 것을 희망했다.

이혜민 한·미 FTA 기획단장은 "미국의 제안을 분석한 뒤 부처 간 논의를 거쳐 구체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우리 국회의 비준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범위는 예상했던 수준

미국은 예상대로 △노동 △환경 △의약품 △안보 △정부조달 △항만안전 △투자 등 7개 분야에서 추가 협상을 제안했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강력히 요구한 자동차 및 개성공단 분야가 제외된 것은 미국 정부로서도 협상 자체를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핵심은 '노동과 환경 조항 강화'다.

미국은 노동에서 결사의 자유 등 국제노동기구(ILO)의 5개 기준,환경에서 오존층 파괴물질에 관한 몬트리올의정서 등 7개 국제환경협약 의무를 이행할 것을 명시하고 이를 위반하면 무역보복까지 가능한 일반분쟁해결 절차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정부는 노동 5개 기준과 관련된 8개 협약 중 한국은 평등대우·고용 및 작업장 차별금지·최저연령·아동노동 금지 등 4개를 비준한 반면 미국이 비준한 것은 강제노동 폐지,아동노동금지 등 2개에 불과한 만큼 불리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 분야도 양국 모두 7개 국제협약을 비준하고 집행하고 있다.

다만 일부에선 정부가 2009년까지 보류한 복수노조 허용 문제와 공무원 노조의 파업권 문제 등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문제가 될 부분은 '분쟁해결 절차 변경'이다.

이 단장은 "한·미 FTA는 노동과 환경 분야에서 각각 특별분쟁해결 절차를 넣어 위반사항이 있으면 벌금(최대 1500만달러)을 내고 이를 노동 및 환경 여건 개선에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일반분쟁 해결 절차가 도입되면 노동·환경 관련 분쟁에 대해서도 해결이 안될 경우 무역보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선 이미 타결된 협정문 자체를 바꿔야 하는 부담도 있다.

그외 의약품 투자 정부조달 등 나머지 조항은 선언적 규정이나 자국내 사정을 고려한 문구 수정 등이 대부분이다.


◆이달중 협상 마무리 어려워

정부가 미국의 추가 협상 제안을 거부하긴 어렵다.

내용 자체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데다 추가 협상이 없다면 미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이 한·미 FTA를 비준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딜레마는 오히려 추가 협상을 언제,어떤 형식으로 수용하느냐에 있다.

미국은 이달 말 서명 전 타결을 원하지만 서명까지 보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굴욕외교'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어서다.

정부 관계자는 "21~22일 웬디 커틀러 대표의 방한 때는 추가 협상이 아니라 제안 내용을 명확히 확인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서명 후 추가 협상을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최근 한·미 FTA 추가 협상과 서명을 분리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현재 합의된 협정문의 서명과 만약 제기될 수 있는 추가 협의는 별개 문제로 보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지난 13일 말했다.

그러나 서명 후 협상할 경우 서명까지 끝난 협정문을 다시 고쳐야 한다는 부담을 안을 수 있다.

특히 미 의회가 부여한 무역촉진권(TPA)이 이달 말 만료되는 만큼 그 이후엔 의회가 자동차 개성공단 등의 재협상을 본격적으로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