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패션타운이 '경매 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 들어 매물로 나온 경매 점포만 91개로 작년 한 해 물건의 70%에 달하고,유찰이 지속돼 낙찰가율이 10%대로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패션몰 공급 과잉이 1차적인 원인이지만,전문가들은 지난 10여년간 의류 소재,봉제,도매산업 전반에 걸쳐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긴 결과라고 지적한다.

동대문 패션타운이 자체 생산 기반을 잃고 중국산 의류의 판매기지로 전락하면서 '싸구려' 이미지가 굳어져 국내 수요를 확장하지 못한 데다 해외 바이어의 발길마저 끊겼다는 것.


◆위기의 동대문 패션타운

12일 부동산 경매정보 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동대문 패션타운의 신규 경매 신청 건수는 2005년 110건,2006년 133건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나더니 올 들어선 지난 11일 현재까지 91건이 경매에 부쳐졌다.

몇 년째 주인을 찾지 못한 물건까지 합해 12일부터 한 달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될 경매 점포는 138개에 이른다.

낙찰가율도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지난달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헬로에이피엠 매장(8층,1.79평)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매장은 2004년 처음 경매 시장에 나온 이후 13번이나 유찰을 거듭한 '악성 매물'로 이날 두 명만이 응찰에 참가했다.

이날 최종 낙찰가는 1001만원으로 감정가 8400만원의 12%에 불과했다.

동대문 도매 패션몰인 누죤의 경우 2005년만 해도 감정가의 48%에 팔렸으나 작년에 34%로 떨어지더니 올해는 20%까지 급락했다.

부동산 매물로 나온 매장도 부지기수다.

업계에선 전체 3만여 매장 가운데 공실률이 20%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미현 상가뉴스레이다 연구위원은 "밀리오레나 헬로에이피엠의 노른자위 매장 매매가가 2000년 대비 반토막이 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동대문에서 30년간 영업해 온 삼화저축은행이 지난해 동대문 지점을 폐쇄하는 등 금융회사들도 "일거리가 없다"며 철수하고 있다.

수협 동대문지점 관계자는 "상인 대부분이 투자는 고사하고 대출금 갚기에도 급급한 형편"이라고 전했다.

◆선진국.중국에 낀 샌드위치 신세

이 같은 '동대문의 쇠락'에 대해 전문가들은 명품 브랜드로 승부하는 선진국과 저가 의류시장을 장악한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진단한다.

동대문 패션타운이 가격 경쟁력에 뒤져 중국산(産) 의류를 들여오는 데 급급한 사이 광저우 바이마(白馬) 시장 등 중국 상인들은 디자인,부품 조달,생산 등을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동대문의 '옛' 특징을 그대로 모방,전 세계 바이어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

동대문 패션타운에서 유통되는 의류의 대부분이 중국산이라는 게 상인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동대문 오딧세이'의 저자인 이종수 MS에이전시 대표는 "광저우의 위성도시인 둥관과 중산 내 의류 공장에선 생산 라인의 20% 정도를 한국인이 임차하고 있을 정도"라며 "이는 동대문 패션타운이 해왔던 소매,도매,수출이라는 기능 가운데 이제 소매만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수출의 경우 러시아 대만 등의 해외 바이어들은 2000년을 전후로 자취를 감췄고 간혹 찾아오는 일본 바이어들도 엔화 약세 탓에 발길을 중국으로 돌리고 있다.

GS이스토어의 의류 판매업체인 아이걸의 황근용 실장은 "동대문에 가도 어차피 중국산이기 때문에 아예 광저우에 공장을 차렸다"며 "'동대문=도매시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면서 동대문 패션타운과 인터넷 상인들이 소매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정희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팀장은 "1970년대에 공장을 모두 해외로 이전했던 일본에선 요지 야마모토,레이 가와쿠보 등 글로벌 디자이너를 육성하고 '이세이 미야케' 같은 세계에서도 통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데 주력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하지만 한국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동휘/박종서/장성호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