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는 국내 대학 중 가장 선구적으로 국제화를 추진해 온 대학이다.

1885년 고종의 궁정어의(宮廷御醫)인 미국인 선교사 앨런이 세운 광혜원을 모태로 하는 설립 역사부터가 그렇다.

1966년 설립된 연세어학당 역시 국내 첫 대학 내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이다.

이후에도 외국교수 초빙 및 해외 학생 유치 등에서도 연세대는 늘 국내 대학의 선도자 역할을 해왔다.

2010년 송도에 건설할 글로벌캠퍼스는 이 같은 연세대 국제화 프로젝트의 정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송도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정창영 연세대 총장은 "송도캠퍼스 건설은 100년 앞을 내다보고 하는 사업으로 이곳에서 공부한 학생 중에서 세계를 이끄는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리더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 총장을 최근 연세대 총장실에서 만나 송도캠퍼스 준비 상황 등에 대해 들어봤다.

◆ 대담=김수찬 사회부 차장

-평소 '글로벌 리더를 키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해오셨는데요.

"연세대에는 전국 상위 1% 정도의 학생들이 들어옵니다. 입학제도가 바뀌어도 우수한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들어온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학생을 어떻게 선발할지보다는 뽑아 놓은 학생들을 4년 동안 어떻게 교육시킬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들이 가진 잠재력은 이미 세계적 수준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능력을 잘 배양시켜 글로벌 리더로 키워야 할 책임이 있기에 그에 걸맞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입니까.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되는 문학 철학 역사 등 인문학적 지식을 쌓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초스피드 시대에서 전공지식은 사회에 나가면 5년도 채 못 써먹습니다. 따라서 장기적인 토양분이 되는 인문학적 지식을 단단히 다지는 데 역점을 둬야 합니다. 또 하나는 국제적 마인드를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환학생 제도 등을 통해 해외에서 경험을 쌓게 하는 '아웃바운드(outbound)' 국제화와 외국 교수와 외국 학생들을 우리 캠퍼스에 끌어들이는 '인바운드(inbound)' 국제화를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인바운드 국제화 중 하나가 송도캠퍼스 프로젝트입니까.

"그렇습니다. 송도캠퍼스는 연세대 인바운드 국제화의 최종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 교수들이 한국 대학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이 캠퍼스 내에 외국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진정한 국제화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우리 학교가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가장 잘 갖춰진 학교로 평가받지만 그래봐야 연간 수백명 정도만이 외국에 나갑니다. 아웃바운드 국제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죠.전교생을 외국에 나가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반대로 외국인 교수와 학생들을 우리 캠퍼스로 끌어들이면 됩니다. 송도캠퍼스가 바로 이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해줄 것입니다."

-송도캠퍼스를 추진하는 데 문제점은 없습니까.

"처음 이 프로젝트를 발표했을 때 정부 부처 간 견해가 달라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정부와 큰 방향에 대해 합의가 이뤄진 만큼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믿습니다. 인천시가 2010년 3월 개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비쳤기 때문에 올해 11월 공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캠퍼스 부지가 너무 넓어 대학이 민간 기업처럼 부동산개발을 하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는데 송도캠퍼스를 연세대의 지방캠퍼스로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외국 대학의 분교를 유치하는 조인트 캠퍼스와 함께 연구개발(R&D)센터 등도 들어서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넓은 부지가 아닙니다."

-조인트 캠퍼스를 위해 외국 대학들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압니다.

"미국 UC버클리가 이미 동아시아 교육기지를 송도캠퍼스에 설립하기로 합의했고 아이비리그 학교 중 몇 군데와도 접촉 중입니다. 아이비리그 학교 두세 군데를 유치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또한 영국과 캐나다 대학도 각각 한 개씩 유치할 생각입니다. 영국의 경우 케임브리지대학이,캐나다는 토론토대학이 유력합니다."

-송도캠퍼스 외 연세대에서 추진 중인 계획 중에 '글로벌 5-5-10'이란 것이 있던데요.

"연세대가 5년 내에 적어도 5개 분야에서 글로벌 톱 10에 들어가겠다는 뜻입니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유력 분야 12개의 선정을 4월에 이미 마쳤습니다. 인문사회 분야에선 한국학,이학 분야에선 화학 물리 천문우주,공학 분야에선 신소재 전기전자 등이 뽑혔습니다. 선정된 분야 중 화학 물리 천문우주 등은 이미 세계 10위권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대학들이 무리하게 국제화를 추진하다 보니 부실한 영어 강의 등 부작용도 적지 않은데요.

"아직까지 초기 단계여서 그러한 문제점들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외국 학생 수요가 많은 과목부터 영어 강의를 늘려 나가고 있습니다. 이공계나 사회계열은 영어 강의를 권장하고 있지만 한국학 등에서도 영어 강의를 확대해선 곤란하죠.우리 학교에서 원하는 기본 방향은 한국 교수가 한국 학생 앞에서 영어 강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국인 교수가 영어로 강의하는 게 최선이지만 아직까지 많은 외국인 교수를 데려올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그런 방식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5년 내에는 모든 과에 외국인 교수를 1명 이상 고용할 계획입니다."

-최근 기업들이 '대학이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우지 못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형태의 대학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리더를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학이라면 인문학 등의 기초 교육에 힘쓰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이비리그 대학들도 이러한 교육을 펼치고 있습니다. 첨단 기업인 HP의 CEO였던 칼리 피오리나도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한 인문학도였습니다. 저는 경제학과 교수 시절부터 기업들에 상경대생과 인문대생들을 차별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업이 회계학 같은 것들은 가르쳐 줄 수 있지만 인문학적 상상력은 가르쳐 줄 수 없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인문대생들이 더 큰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연세대는 국내에서 기여입학제 도입을 처음 검토한 대학입니다.

"현재 대학 재정의 대부분을 등록금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등록금 1000만원 시대가 왔습니다. 국민소득 수준으로 볼 때 등록금을 지금보다 더 인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업들 역시 대학이 배출한 인재를 쓰려고만 하지 기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정부 지원도 대학 재정의 4%에 불과합니다. 일본만 해도 12%입니다. 지난 40여년간 정부 교육예산의 90% 이상이 초·중·고교를 위해 쓰여지고 있습니다. 초기 경제개발 단계에는 이 정책이 맞지만 글로벌 시대에는 고등교육의 육성이 더 중요합니다. 대학들의 발전을 위해 이제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할 시점이 됐다고 봅니다."

-최근 몇 년 새 글로벌화란 측면에서 라이벌인 고려대가 연세대를 추월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고려대가 최근 성장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려대가 이전까진 국제화란 측면에 소홀했지만 현재는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적어도 국내 대학 중 7~8개가 함께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협력도 하고 경쟁도 해야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 대학들이 세계 수준에 이른다면 우리나라도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이태훈/사진=김정욱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