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의 해적3-세상의 끝에서'는 168분짜리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재미있는 코스가 준비돼 있어 졸 틈이 없지만 끝나고 나서 남는 것은 멀미와 허망함뿐이다.

디즈니랜드의 놀이 기구 홍보를 위해 제작된 영화인 탓에 하나의 주제 안에 장면들이 엮여 있는 것이 아니라,멋진 장면들을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억지로 구성한 느낌이 든다.

영국 동인도주식회사는 괴물 선장 데비 존스와 함께 전 세계 바다를 장악해 간다.

여기에 반발한 해적 영주들이 힘을 모으려 하지만 그 중 한 명인 잭 스패로우(조니 뎁)는 이미 2편에서 문어 괴물 크라켄에 의해 세상 끝으로 끌려간 상태.싱가포르의 해적왕 사오팽(저우룬파)으로부터 '세상의 끝'으로 가는 '해도(海圖)'를 얻은 엘리자베스(키라 나이틀리)와 윌리엄 터너(올란도 블룸)는 천신만고 끝에 잭을 구해 온다.

마침내 해적연합대는 싸움에서 승리한다.

그러나 데비 존스의 칼에 심장을 다친 윌리엄 터너는 생명을 유지하는 대가로 망자들을 저승으로 영원히 이끌어야 한다.

1편에서 3편으로 올수록 영화의 스케일은 커졌지만 캐릭터들의 힘은 약해졌다.

조니 뎁의 엉뚱하고도 애교 섞인 연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특유의 걸음걸이와 말투는 그대로지만 '우연같지 않은 우연'으로 위기에서 탈출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소 뒷걸음으로 쥐 밟아' 해적왕이 되는 키라 나이틀리의 연기는 카리스마가 부족하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올란도 블룸은 배역의 중요성에서 불구하고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

저우룬파의 출연에 기대를 모았다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가 가장 악독한 모습을 보이며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순간 어이없게 죽어버려 '설마 여기까지만 나올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 속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은 칭찬할 만하다.

수십만개의 돌멩이가 게로 변해 얼음 위에서 바다로 배를 옮기는가 하면,세상의 끝은 과거 사람들의 상상처럼 거대한 폭포로 표현했다.

해적 영주 9명의 은화가 사실은 가난한 시절 그들의 주머니 속에 있던 잡동사니를 상징하는 단어라는 발상도 깜찍하다.

영화 곳곳에서 4편을 예고하는 복선을 찾는 것도 재미다.

1,2편을 안 봐서 3편을 보기 힘들겠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줄거리가 워낙 복잡해 본 사람이나 안 본 사람이나 생각 안 나는 건 매한가지다.

그래도 정 마음에 걸린다면 두 가지만 기억하자.'더치맨'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데비 존스의 배 이름이고,엘리자베스는 2편에서 잭을 괴물 크라켄에게 넘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