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가 상장사의 주가 부양뿐 아니라 지주회사 전환의 '묘수'로 쓰이고 있다.

자사주를 갖고 있을 경우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시키는 게 용이할 뿐 아니라 최대주주는 주식교환 등을 통해 지주사에 대한 지배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지주사 전환에 나선 SK㈜와 한진중공업이 대표적 사례다.

자사주를 활용해 지주사 전환에 따른 비용을 줄이고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만드는 셈이다.

이처럼 자사주를 활용한 지주사 설립 바람은 정부의 지주사로의 전환 유도 등에 힘입어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자사주 매입은 지주회사 전환용?

2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SK㈜를 지주사인 SK㈜와 사업 자회사인 SK에너지로 분할을 추진 중인 SK그룹은 SK㈜가 보유한 자사주 덕분에 지주회사 요건을 무리없이 충족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의 경우 20%의 지분을,비상장사는 40%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지주사인 SK㈜는 지주사 전환 후 현재 SK㈜가 가진 자사주 17.82%(3월말 기준)가 분할된 SK㈜ 자사주와 SK에너지 지분 17.82%씩을 갖게 된다.

최대주주인 최태원 회장이 지분 44%를 지닌 SKC&C 등 특수관계인은 보유 중인 SK에너지 지분 12.17%를 지주회사에 현물 출자하고 지주사 SK㈜가 가진 자사주나 신주를 받을 수 있다.

SKC&C 입장에서는 지주사 SK㈜와 SK에너지 지분을 모두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교환비율은 SK㈜와 SK에너지의 지분가치를 따져 결정된다.

결과적으로 지주사 SK㈜는 SK에너지 지분 최소 29.99%를 확보하게 되고, SKC&C도 교환비율에 따라 다르겠지만 SK㈜ 지주사 지분 30~40%를 갖게 된다.

SK그룹 관계자는 지주사전환을 위한 가능한 방안중 하나이나 현재까지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지주사 전환 계획을 발표한 한진중공업도 자사주가 자회사 보유지분 요건을 충족하고 최대주주인 조남호 회장의 지주사에 대한 지배를 견고히 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SK㈜와 비슷한 주식 교환 과정을 거쳐 조 회장은 현재 15.37%인 지분이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한진중공업은 자사주 1199만주(18.50%)를 갖고 있다.

◆유사 지주사도 자사주 활용 잇따를 듯

업계에서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고 자사주 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들도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SK를 따라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 CJ 현대중공업 LS전선 코오롱 SK케미칼 등이 거론되는 업체들이다.

이들 기업은 현재 지주사는 아니지만 지주사 전환을 추진 중이거나,그룹 내 핵심 기업으로 지주사 전환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자사주를 10% 이상 갖고 있으며 자사주 소각 계획도 없는 상태다.

한화도 자사주 7.84%를 갖고 있어 의지에 따라서는 SK식 지주사 전환이 실행에 옮겨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특히 SK케미칼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될 경우 SK와 유사한 지분 교환 작업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SK케미칼은 전체 발행주식의 11.41%인 236만주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최대주주인 최창원 부회장의 지분율은 8.85%에 불과,지배구조가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정환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삼성그룹의 삼성전자가 보유 중인 자사주 14.39%와 최근 자사주 추가 매입을 결의한 삼성물산도 삼성이 순환출자 구도에서 벗어나 지주사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주가부양 목적으로 이뤄진 자사주 매입이 최대주주의 지배구조 강화로 오용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관계자는 "지주사 설립은 최대주주의 지배권 강화에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주주들이 회사의 주주구성이 바뀌는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