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에게 물었다.

산다는 게 뭐냐고….노승은 "그냥 사는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이건 답이 아닌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들켰을까.

노승은 이렇게 덧붙였다.

"사는 것은 누구나 똑같지만 삶의 내용은 각자 다릅니다.

자기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와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지요."

경북 봉화군 봉성면 금봉2리,소백산·태백산 중간 지점의 문수산 아래 금봉암(金鳳庵).부처님 오신날(24일)을 앞두고 지난 18일 오후 이곳을 찾았을 때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고우 스님(古愚·70)은 대구에서 찾아온 신도들을 위해 한바탕 법석을 펼친 뒤였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태백산 각화사 서암에서 지난해 이곳에 전각 두 채를 지어 수행처를 옮겼으나 여전히 법문을 원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찾아오는 이들을 물리치는 법이 없고,언제나 밝은 미소로 맞아줄 뿐만 아니라 공부하려는 사람에겐 조금이라도 더 지혜를 나눠주기 위해 온 힘을 쏟으니 어찌 발길이 끊이겠는가.

-해마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합니다.

이날을 어떤 뜻으로 맞아야 하겠습니까.


"부처님은 깨달은 상태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깨닫고 보니 모든 존재가 본래 부처님'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 오신날이 역사적으로는 육신의 탄생을 말하는 것이지만 진짜 태어남은 깨달았을 때라고 봐야겠지요.

깨달은 후 자신의 태어남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거든요.

깨닫기 전에는 온갖 번뇌와 욕망에 시달리는 인간이었을 뿐이지만 깨닫고 난 후에는 모든 중생이 부처님으로 태어나 존재하고 있음을 아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육신 탄생을 축하할 뿐만 아니라 이런 의미도 함께 새겨야 진정한 깨달음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형상만 보지 말고 형상 속에 들어 있는 존재의 본질을 함께 보는 것입니다.

잘 생기고 못 생기고,잘 살고 못 살고,크고 작고 등 형상의 차별은 있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의 본질은 평등합니다.

이것을 알고 나면 집착도,갈등도,착각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를 때는 온갖 번뇌와 갈등으로 괴로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종교 인구가 전체의 절반을 넘는데도 사회가 맑고 향기롭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불교는 어떻습니까.


"종교를 현실과 분리하는 세태는 올바르지 않습니다.

불교 신자라면 철저히 현실에 입각해 수행하고 헛된 꿈에서 깨어남으로써 삶이 달라지고 생활이 행복하고 평화로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일상생활과는 별개의 유토피아를 꿈꾼다면 어리석은 일이지요.

깨달음이 현실에 반영돼 개인이 행복해지고 그 행복을 가정과 사회로 전파할 때 불교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간혹 신도들 중에 가정과 가족을 소홀히 하면서 절에 오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목적과 수단을 혼동한 것이지요.

절에 와서 배운 것으로 가정을 좋게 해야 자기 신앙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노장은 목적과 수단의 혼동 내지 뒤바뀜에 대해 거듭 설명하고 강조했다.

세상을 맑게 이끌어야 할 종교인들이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도,위정자들이 정쟁만을 일삼는 것도,남북이 다투는 것도 목적과 수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혼동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전체 국민을 위하기보다 반대파와 끝없이 갈등만 하는 것은 목적과 수단이 거꾸로 됐기 때문입니다.

위정자가 가진 생각은 수단일 뿐,목표는 국민을 편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싸움질만 하면 국민만 피해를 봅니다.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려는 목표는 잃어버린 채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만 추구하면 뭐합니까.

날마다 살기 위해 발을 동동 굴러야 하지 않습니까.

온 세계가 더불어 잘 살도록 하는 게 정치의 목적인데 싸우는 목적은 어디가고 내편,네편만 남아있지 않습니까."

-올해는 대통령을 새로 뽑는 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지도자로 뽑아야 할까요.


"지도자는 사심없이,열심히 일할 사람이면 됩니다.

이를 위해 우선 후보자들이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지 않도록,각성하도록 국민들이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또한 국민들도 후보자들의 잘못된 생각에 오도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들이 각성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해요."

-며칠 전에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가 휴전선을 넘어 시험운행을 했습니다.

통일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남북의 위정자들이 수단과 목적을 일치시키면 됩니다.

체제가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목적은 국민이 잘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측이 자기의 주의·주장을 목적으로 삼고 자기 방식만 고집해 갈등이 생깁니다.

특히 북한은 위정자의 욕망을 위해 목적과 수단을 혼동시키고 폭력까지 동원하니 정말 안타까워요.

한반도에 존재하는 핵으로 후손들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가치관 혼란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바람직한 삶을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사람에 따라 다양한 삶의 목표를 가질 수 있지만 이를 외적 조건만 추구하는 삶과 내적 가치를 이해하면서 외적 조건을 추구하는 삶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외적 조건만 추구하면서 살지요.

그러나 자기가 하는 일의 목표를 외적 조건에만 두면 돈,승진,좋은 차,넓은 집 등 모든 것을 남과 비교하면서 거기에 못 미치면 괴로움(苦)을 겪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몸조차 몸짱,얼짱 하면서 비교하고 괴로워합니다.

그야말로 자기 학대의 삶이지요.

그러니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적 가치,즉 형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이해하는 삶을 살면 평화와 자유,행복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일러 운문 스님은 '매일 매일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라고 했습니다.

본질을 보면 얼짱이든 아니든 모든 게 평등함을 알게 되니 남과 비교해서 스트레스 받을 일도,남을 선망하거나 얕잡아볼 일이 없어요.

외적 조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자기 일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되니 굉장한 자기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자기 완성과 행복,이타적 삶을 살 수 있고,부와 명예는 물론 인격까지 갖추게 됩니다.

우리 국민의 1%라도 이렇게 산다면 사회가 정말 달라질 것입니다."

노장은 "국민 의식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선진 대열에 들기는커녕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추락할지도 모른다"며 "각계 각층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내적 가치'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것이며,노사 문제를 비롯한 온갖 갈등도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와 너를 초월한 그 세계에는 이기심이 없으니 어찌 욕망과 갈등이 끼어들겠는가.

신록이 눈부신 문수산에 새소리만 청명하다.

봉화=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 약력 ]

◇1937년 경북 고령 출생
◇1961년 김천 청암사 수도암으로 출가
◇고봉·관응·혼해 스님으로부터 경전 공부
◇1968~1969년 문경 봉암사 선원 재건
◇1980년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역임
◇묘관음사 김용사 봉암사 범어사 각화사 선원 등에서 수행
◇봉암사 주지,각화사 태백선원 선원장,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역임
◇2005년 '조계종 수행의 길-간화선' 편찬 주도
◇2007년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전국선원수좌회 선림지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