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대세상승장에서는 언제나 시세를 이끈 주도주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1992년 저(低) PER(주가수익비율)주들의 반란이 대표적이다. 대한화섬 삼나스포츠 태광산업 연합철강 등이 그런 주식들이었다.

이들 종목은 불과 4개월 만에 무려 3∼4배씩 폭등했다.

뒤이어 1993년 말부터는 자산주 바람이 거셌다. 자산주 돌풍을 맨 처음 일으켰던 성창기업의 경우 무려 35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고 방림 경방 롯데칠성 만호제강 삼부토건 등 자산주들의 시세분출이 한동안 이어졌다.

외환위기가 끝난 1999년부터 2000년까지는 IT(정보기술)주로 대표되는 성장주가 시장을 주도했다. 또 2005년 상승장에서는 배당주가 단연 으뜸이었다. 그렇다면 2007년 지금의 상승장 주역은 누구일까.

◆가치주 전성시대

코스피지수를 사상 최고치인 1600 선까지 올려놓은 일등공신 중 하나는 바로 가치주다. 펀더멘털이라고 불리는 내재가치에 비해 주가가 턱없이 낮게 거래되던 주식들이 일제히 급등하면서 과거 한번도 오르지 못했던 지수 1500 선, 1600 선을 차례로 밟게 된 것이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사실 과거 논리대로라면 지수 결정력이 가장 컸던 삼성전자가 최근 2년간 제자리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지수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는 것은 미스터리에 가깝다"며 "이 미스터리를 푸는 데는 가치주 군단들의 혁명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실제 가치주로 불리는 종목들의 최근 주가 상승률을 보면 깜짝 놀라울 정도다. 동양제철화학은 불과 두달 만에 주가가 174% 급등했다. 지난 10년간 주당 4만원 밑에서 꿈쩍하지 않던 주식이 지난 3월부터 상승세를 타 눈 깜짝할 사이에 11만원대까지 치솟은 것이다. 두산 코오롱 금호산업 한진 S&TC 등도 실적이나 자산가치 대비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올 들어 4개월 만에 주가가 모두 2배 이상 올랐다. 중소형 가치주들도 마찬가지다. 우량 가치주로 분류되는 이건산업의 경우 2000년 이후 무려 6년 가까이 주가가 바닥을 기다 최근 한달여 만에 주가가 50% 치솟았다.

◆가치주에도 버블이 끼었다?

가치주가 단기 급등하면서 일부에서는 벌써 가치주에 버블이 낄 정도로 과도하게 오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펀드매니저는 "과거 4∼5년간 전혀 움직이지 않던 주식이 불과 한두 달 만에 두배 가까이 급하게 오르는 것을 보면 솔직히 겁이 날 정도"라고 말했다.

가치주가 동반 급등하면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더이상 가치주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의견은 다르다.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전무는 "주식시장이 존재하는 한 가치주는 있기 마련"이라며 "시장의 흐름에 따라 가치주 개념이 달라질 뿐"이라고 말했다. 다시말해 과거에는 태평양 농심 롯데칠성 등 아무런 이유 없이 시장의 무관심으로 낮은 PER에 거래되는 종목들이 최고 가치주로 여겨졌고,이들 종목은 이미 PER가 20배를 넘어설 만큼 주가가 많이 오른 상태다. 이 전무는 "따라서 지금은 단순 저 PER주 개념으로 가치주를 바라봐서는 안된다"며 "재무제표에는 숨겨져 있는 자산가치나 겉으로 나타나지 않은 독점적 사업구조 등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기업가치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무형의 자산가치가 우량한 종목을 가치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고 가치주는

그렇다면 앞으로의 최고 가치주는 어떤 종목들일까. 국내 주요 11개 증권사를 통해 '최고 가치주 후보'를 선정한 결과 포스코가 가장 많은 5군데 증권사에서 추천을 받았다. 그동안 주가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수익가치에 비하면 주가 재평가는 이제 시작단계일 뿐이라는 이유가 제시됐다.

포스코 다음으로 KT동국제강이 4표를 얻었다. KT는 배당이 우수해 안전 마진을 확보하고 있는 데다 주가는 역사적 최저 수준으로 하방경직성을 갖고 있으며,자산가치도 우수한 점에서 우량 가치주로 꼽혔다. 동국제강은 중견 철강주 가운데 수익 창출력이나 안정성에 비해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 매력 포인트로 제시됐다.

이 밖에 LS전선기업은행 KT&G 한국가스공사 신세계가 각각 3군데에서 추천을 받았으며,코스닥 업체로는 유일하게 NHN이 3표를 획득했다. 한국전력 한국금융지주 LG화학 LG석유화학 등은 각각 2군데서 우량 가치주로 선정됐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