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잦은 `읍소'에 판사들 `고뇌'

가짜 유명상표가 부착된 모자를 만든 혐의로 최근 서울북부지법 형사 법정 피고인석에 서게 된 I(55)씨는 공판에서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하는 대신 판사에게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집행유예)을 내려 달라"고 호소했다.

I씨가 벌금형보다 한층 무거운 처벌인 징역형(집행유예) 선고를 바란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다.

말이 좋아 사장이지 직원 한명을 두고 주문자로부터 모자 한개당 400원의 가공비를 받기 위해 5평 짜리 지하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는 I씨로서는 수백만원에 이를 벌금을 감당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통상 I씨 사건 같은 경우 500만원 가량의 벌금형이 선고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바람과 어려운 경제적 형편을 고려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경기 전망이 그다지 밝지 못한 가운데 I씨처럼 돈이 없어 벌금형보다 형량이 더 무거운 징역형을 요구하는 안타까운 일이 잦아지고 있다.

서울의 5개 지방법원 가운데 유독 서민층 주거 지역을 많이 관할하는 북부지법 형사 재판부 판사들은 이 같은 상황을 자주 겪다 보니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가 깊어지고 있다.

이승철 판사는 15일 "피고인들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물으면 `벌금 나오면 죽는다'며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별히 사례를 꼽기 힘들 정도로 흔한 편"이라며 "경기가 나빠서인지 전보다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안타까운 일"이라고 전했다.

윤종수 판사는 "벌금을 마련 못할 사람에게 벌금형을 내리면 환형유치(돈을 못 내면 구치소에서 노역을 하는 것) 때문에 어차피 잡혀오게 된다"며 "징역형을 부탁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고 착잡한 마음이 들어 선고에 참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고인들이 원한다고 해서 무작정 집행유예형을 내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기에 판사들도 고민 할 수밖에 없다.

윤 판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집행유예를 처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기 떄문에 범죄예방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며 "무조건 집유를 선고하기도 어려운 입장"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법관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피고인에게 느끼는 `연민'과 재범 방지 등을 위해 엄격한 법적용이 불가피하다는 `차가운 이성 '사이에서 판사들은 오늘도 계속 시험을 받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