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간 한 분야에서만 일하던 기술직 근로자가 47세에 영업직 발령을 받은 뒤 우울증을 겪게 됐다면 업무 스트레스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A씨는 1980년 KT에 기능직으로 입사한 뒤 2003년 12월 영업부로 전보되기까지 23년 이상을 기술 계통에서만 일했다.

이 기간 A씨는 통신선로기능사 자격증, 정보통신기술자 중ㆍ고급 자격증을 따는 등 전문성을 키웠다.

그러나 회사측은 2003년 10월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하면서 지방 근무를 하던 A씨에게도 명퇴를 권고했지만 응하지 않자 두 달 뒤 영업부 시장관리팀으로 전보 발령을 내렸다.

그는 팀 안에서 회사ㆍ학교ㆍ공공기관 등 대형 고객의 장비 관리와 마케팅을 맡는 `지역 매니저'가 아니라 개인을 상대로 인터넷, 휴대전화 관련상품을 판매하는 `상품판매 전담직원'으로 분류됐다.

당시 나이는 47세였다.

평소 낙천적 성격이라는 말을 들었던 A씨는 이후 우울감, 의욕상실, 대인관계 기피증상을 보여 이듬해 3월부터 매달 2~3차례 병원 치료를 받았으며 `보직이 변경돼 적응이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는 실적 부진으로 소명서 제출 지시에 이어 경고를 받기도 했으며, 결국 2004년 9월 `우울장애'(우울증) 진단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사유로 질병을 얻었다'며 요양을 신청해 승인을 받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단독 김정욱 판사는 KT가 "A씨가 업무상 사유로 우울증에 걸렸다고 인정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결정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김 판사는 판결문에서 "A씨의 업무 내지 업무 스트레스가 질병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23년 이상 기술 업무만 처리해 왔고, 자격증 취득 등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는데도 47세에 영업부서로 발령받아 낯선 업무를 하게 된 것 자체가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업무가 부여된 것에 대해 모욕감ㆍ자괴감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