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에 따르면 미국을 방문 중인 아베 일본 총리가 미·일 양국 정상회담에서 원자력 개발,핵 비확산,온난화 대응 등을 담은 '미·일 원자력 공동 행동계획'에 합의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행동계획에는 지난해 2월 미국 에너지부가 발표한 '국제 원자력(핵에너지) 파트너십(Global Nuclear Energy Partnership,GNEP)'구상과 관련해 일본이 연구개발 분야 등에서 미국과 협력한다는 내용이 명기된다는 얘기가 들린다. 원자력에서 미·일의 밀월(蜜月)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신에너지 정책으로도 불리는 GNEP 구상은 미국으로선 커다란 정책적 전환이었다. 핵 확산을 우려해 지난 30여년간 중단했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그러했다.

GNEP 구상이 발표되자 국제적으로는 큰 논란이 일어났었다.

GNEP에는 핵무기 전용이 어려운 재처리 기술을 고안하고, 나아가 원자력 국가들을 핵연료 공급국과 핵연료 이용국으로 분리해 관리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자국의 재처리 재개가 국제사회에 잘못된 메시지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할 장치가 필요했겠지만 핵연료 이용국 입장에서 보면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가 나올 만했다. 재처리 시설 같은 것은 보유하지 않겠다고 일찍이 선언(한반도 비핵화 선언)해 버렸던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점은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 얘기는 이 정도에서 일단 접어두자.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또 한 가지는 미국이 재처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내부 사정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GNEP를 발표하면서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감안할 때 원자력 에너지가 필요하고,그 활용을 늘리려면 폐기물의 양을 감소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네바다 주에 위치한 야카산(Yucca Mountain) 처분장은 사용 후 핵연료가 주종인 고준위 폐기물 처분을 위한 곳이다. 20여년간 70억달러의 연구비를 투자한 끝에 2002년 7월 연방의회의 동의로 부지로 선정됐다. 2017년 상용운전이 목표이고 2035년까지 예상되는 폐기물은 전부 수용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를 생각하면 몇 개의 처분장이 더 필요할지 모를 일이다. 미국이 영구 처분장을 마련하는 동시에 재처리를 통해 폐기물 감소에 나선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얘기를 해 보자. 방폐장 부지로 선정된 경주는 사용 후 핵연료와는 분리된 중저준위 처분장일 뿐이다. 사용 후 핵연료 문제에 대한 2004년 12월 제253차 원자력위원회의 결정은 이렇다. "국가 정책방향,국내외 기술개발 추세 등을 감안 … 중간저장시설 건설 등을 포함해 중장기적으로 검토… 토의 … 국민적 공감대…." 한 마디로 기다려 보자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을 과연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발전소마다 사용 후 핵연료가 임시 저장되고 있는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갈 수 있고, 중간저장시설 건설은 언제 논의되는가. 새로운 기술개발을 위한 확고한 지원계획은 있는가. 재처리를 제약하는 한·미 원자력협정은 바꿀 수 있나. 재처리를 해도 영구 처분장은 필요한 것 아닌가 등 정부에 묻고 싶은 게 많다. 폐기물처리 로드맵 없이 원전의 비전은 없다. 그런 점에서 사용 후 핵연료 문제 공론화는 빠를수록 좋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