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회 녹십자 사장의 집무실에 가면 20년 된 신문 기사가 액자 속에 스크랩돼 있다.

허 사장은 사무실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종종 이 기사를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한국신용평가에서 1987년 실시한 기업평판조사에서 녹십자가 종합 1위를 차지했다는 게 기사의 내용이다.

실제로 녹십자는 기업 이미지가 좋은 편이다.

허 사장은 그 비결로 "만들기 힘들지만 꼭 있어야 될 특수의약품 개발에 우직한 정성을 쏟으면서 한 길을 걸어 왔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꼭 있어야 할 특수의약품'이란 바로 백신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녹십자에서 만든 백신을 한번쯤 접종했을 정도로 녹십자는 한국 백신산업의 역사 그 자체다.

녹십자는 그러나 국내 최고 백신 제조 기업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적인 백신 강자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다.


녹십자는 최근 제약업계를 강타하고 있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등의 영향권에서 한 걸음 비껴나 있는 대표적 제약사 중 하나다.

백신이나 혈액제제와 같은 특수 의약품쪽에 집중하다보니 전체 매출에서 제네릭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1.2%(2006년 기준)로 국내 제약사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내 제약사 중 바이오 신약(생명공학 기술로 만든 의약품)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점이 녹십자의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현재 녹십자는 20개의 바이오 벤처기업에 총 15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 중 투자규모가 가장 크다.

허재회 녹십자 사장은 "바이오 의약품 분야에 관한 한 녹십자가 국내 제약사 중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며 "바이오벤처 업계에서도 녹십자로부터 투자를 받았다고 하면 굉장히 인정받은 회사로 통할 정도"라고 말했다.

독자적인 바이오 신약 개발에서도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선 세계에서 세번째로 개발한 골다공증 치료제 'rhPTH'는 국내 임상1상·해외 임상 2상을 마쳤으며,내년이면 임상 3상에 돌입해 2010년께 상품화할 계획이다.

혈우병 치료제 '그린진'은 최근 국내 임상 3상을 완료해 신약 허가 절차를 밟고 있으며,대장암 전이 억제제 '그린스타틴'은 올 상반기 중에 국내외 동시 임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신약개발뿐 아니라 바이오 의약품 생산을 위한 설비투자 면에서도 녹십자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녹십자가 총 1000억원을 들여 짓고 있는 오창공장은 2008년 완공될 경우 국내 유일의 최첨단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장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오창공장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평가국(EMEA)의 기준에 적합한 국제 규격에 맞춰 건설되고 있어 향후 국내 바이오 의약품의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한 교두보가 될 전망이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