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해 증권회사 등 금융투자회사에 지급결제업무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공개적으로 '강력 반대' 입장을 밝혀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10일 '비예금수취기관의 지급결제업무 취급 논의에 관하여'라는 15쪽짜리 자료를 내놓고 증권사 등에 지급결제기능을 허용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정경제부는 한국은행의 주장에 대해 "은행권이 제 밥그릇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강행 방침을 다시 강조했다.

현재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는 증권사의 지급결제업무를 허용하는 정부안과 이 부분을 제외한 수정 법안(이종구 의원 외 12인 발의)이 동시에 계류돼 있어 입법 과정에서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은 "지급결제 은행 고유업무"

한은은 이날 기자설명회에서 "은행의 고유 업무인 결제업무를 증권사에 허용할 경우 결제시스템의 안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으며 은행과 증권업이 분리돼 있는 금융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은이 지난해 10월 정부의 검토 요청에 반대 의견을 전달한 적은 있지만 이처럼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은은 "증권사가 고객예탁금을 100% 증권금융에 예치하긴 하지만 실제 돈이 전달되는 데는 하루의 시차가 있다"면서 "고객예탁금을 예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증권사가 파산할 경우 증권회사의 결제 불이행이 지급결제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은은 또 "은행 예금은 지급준비금 적립 의무가 있지만 증권계좌는 면제돼 규제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측면에서 유리한 증권사가 지급결제기능까지 갖추게 되면 은행에서 대규모 자금 이탈이 우려되고 이 경우 은행들도 지준제도 폐지 등을 요구,현행 지준제도 근간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재현 한은 금융결제국장은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가 증권사에 지급결제업무를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이를 허용한 나라도 5~10년간의 논의를 거쳐 도입했다"며 "금융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일인 만큼 법 제정 이전에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경부 "은행 기득권 주장일 뿐"

한은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재경부는 "한은이 결제 리스크나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주장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임승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고객예탁금은 고객 돈이어서 증권사가 임의로 운용할 수 없다"며 "은행이 예금으로 대출을 해 주는 것과 비교해서 오히려 안정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객예탁금은 신용 창출이 이뤄지지 않는데 무슨 시스템 위험이 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재경부는 증권사 지급결제 허용 문제를 금융소비자의 편익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지급결제를 은행을 통해 할지,증권사를 통해 할지는 소비자가 판단할 사항"이라며 "한은이 굳이 반대를 하는 것은 이자가 거의 없는 은행 보통예금에서 금리가 비교적 높은 증권사 상품으로 자금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한 기득권 보호에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재경부는 4월 임시국회에서 증권사 지급결제 허용 문제를 본격 논의해 늦어도 6월까지는 자본시장통합법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국회는 12일 재경부안과 의원 수정발의안을 놓고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박성완/박준동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