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리 국회논의 `전면배치'로 연금법 재추진 의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9일 국민연금법안 부결을 계기로 한 유시민(柳時敏) 보건복지부장관의 사의수용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대신 향후 국민연금법 개정 논의를 위한 국회와의 교섭을 한덕수(韓悳洙) 총리가 직접 맡도록 하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 같은 입장은 노 대통령으로서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한 나름의 정치적 해법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의 의중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을 직접 찾은 문재인(文在寅) 청와대 비서실장의 브리핑을 통해 나왔다.

문 실장이 전한 노 대통령의 입장은 첫째, "유 장관 사의표명이 국회와 각 정당들이 국민연금법 개정을 다시 추진하고 반드시 실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둘째 "유 장관 사의수용 여부는 복지부의 중요 현안과제들이 매듭된 후 판단하겠다", 셋째, "앞으로 국민연금법 개정을 위한 국회 논의는 국무총리가 직접 주관한다"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노 대통령이 당장 유 장관의 사의 표명에 대해 즉각적으로 '수용' 또는 '반려'라는 양자택일의 선명한 답변을 내놓지 않은 것은 유 장관의 정치적 입지와 정치권의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유 장관의 사의를 즉각 받아들일 경우 국민연금법안 부결의 책임이 유 장관 개인 탓으로 귀결되고, 이로 인해 유 장관이 정치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노 대통령은 국민연금법안 부결의 책임에서 대선 표를 겨냥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입법' 행태, 일부 의원들의 장관 개인에 대한 호ㆍ불호와 국회 입법의무를 혼동한 무책임한 태도 등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유 장관의 사의를 즉각 수용해 결국 '경질'의 모양새로 당으로 복귀시키는 것은 노 대통령의 내키지 않는 선택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으로 유 장관의 사의를 즉각 반려함으로써 재신임하는 절차를 밟을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당장 정치권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한데다, 이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재처리 시도에도 난관을 조성할 수도 있다.

또 이유야 어떻든 국가개혁입법이 좌초된데 대해 주무부처 장관인 유 장관에게 일정하게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의 흐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은 국민연금법 개정의 필요성을 거듭 부각시키면서 유 장관의 사의 수용 여부에 대한 판단을 연금법 개정을 비롯, 한미 FTA 보완대책, 의료법 개정안 등 현안이 매듭지어질 때까지 '유보'하는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한 총리가 향후 국민연금법 개정을 위한 국회내 논의나 각 정당들과의 교섭 업무를 직접 주관토록 한 것은, 주무부처 장관인 유 장관의 역할을 일정하게 제한하는 정치적 의미도 담겨 있다는 해석도 가능해 주목된다.

문 실장도 "복지부가 앞으로 주관부처로서 역할은 여전히 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앞으로 국민연금법의 개정을 위해서 국회나 각 정당들과 교섭하고 논의하는 일은 한 총리께서 직접 주관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장관이 장관직을 '당분간' 수행하지만, 국민연금법 개정 논의에 한해서는 사실상 '손을 떼도록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유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고 (인사권자의) 수용 여부를 기다린다는 현재의 상황도 그렇고, 국민연금법 개정의 추진동력을 약화시킬까 염려도 있기 때문"(문 실장)이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유 장관에 대한 정치권의 '비토' 의견이 있는 상황을 청와대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연금법 개정 논의를 위해 유 장관이 다시 정치권과의 협의에 나설 경우 불필요한 마찰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무총리가 단일법안 처리를 위한 국회, 정당과의 협의에 직접 나서도록 한 것은 노 대통령의 법 개정 의지를 더욱 강력하게 천명하고 법 개정 추진과정에 무게를 싣는 뜻도 담긴 '양수겸장'으로도 풀이된다.

유 장관의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국민연금법 개정 등 현안이 매듭지어지면 노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할 것이라는 해석이 중론이다.

정치권의 분위기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국민연금법 개정논의에 한해서는 장관으로서 대국회 업무 등 정치적 활동이 제한되는 만큼, 이후 현안이 매듭된 뒤에 지속적으로 장관직을 수행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분석이 많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이 이날 "사의 수용 여부는 이후 판단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뜻을 놓고 "유 장관의 사의를 반려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자 "반려가 아니라 유보"라고 수차례 강조하면서 '재신임'또는 '유임'으로 해석되는 흐름을 경계하는 것도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싣게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성기홍 기자 sg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