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등 경제부처 고위관료들이 '한국 경제 위기론'에 대해 말을 180도 바꾸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의 '샌드위치론'이나 '5~6년 뒤 위기 우려'에 대해 공감하는 발언을 했다가 이제는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며 오히려 재계를 공박하는 모습이다.

경제관료들의 이 같은 말 뒤집기는 청와대의 기류에 따라 소신을 접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중장기 대외 경쟁력이나 성장엔진 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가로막는 일이어서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초엔 "위기 우려에 공감"

조원동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은 지난 13일 KBS 라디오방송에 출연,"이건희 삼성 회장의 지적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지적이란 지난 1월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서 제기한 샌드위치론과 이달 9일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5~6년 뒤 큰 혼란을 맞을 것"이란 발언이다.

조 국장은 "지금은 성장 잠재력을 걱정해야 할 시기"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영주 산자부 장관도 사실상 이 회장의 샌드위치론과 같은 말을 했다.

그는 지난 20일 무역협회 조찬강연에서 "중국을 상대로는 무역흑자가 줄고 있는 반면 일본을 상대로는 무역적자가 늘고 있다"며 "이는 우리 무역수지 흑자기조 정착에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젠 "호들갑 떨지 말라"

그러나 김 장관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말을 바꿨다.

김 장관은 그날 국정브리핑 기고를 통해 "샌드위치론은 10년 전 한 컨설팅사가 낸 아이디어의 재탕"이라고 폄하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호들갑스럽게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 비판하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 국장도 마찬가지였다.

조 국장은 22일 국정브리핑에 기고한 '재계 원로 발언과 경제위기론'에서 "(경제위기에 대한) 걱정이 도를 넘어 위기감으로 증폭되고 있으며 패배감으로 발전한다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깎아내렸다.

그는 또 "중국의 추격이 거세 우리도 분발해야 하지만 위기론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우리 자신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김석동 재경부 차관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경제에 대해 단기적 위기론을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거들었다.


◆왜 말을 뒤집었을까

경제부처 고위당국자들이 청와대 눈치를 살펴 소신을 굽힌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청와대의 뜻을 전달하는 창구 중 하나인 국정브리핑은 요즘 '위기론을 돌아본다'는 시리즈를 게재하고 있다.

지난 13일엔 '청개구리 신문들의 때 아닌 경제위기 타령'이란 글에서 "최근 한 대기업 회장의 '정신차려야 한다'는 발언을 침소봉대해 위기론의 중요 논거로 삼아 더욱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공격했다.

이런 기류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청와대의 지적을 받아 급거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얘기다.

특히 조 국장은 참여정부 부동산정책 방향에 거스르는 발언을 했다가 경고까지 받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는 지난 13일 "부동산시장이 안정되면 분양가 상한제,분양원가 공개 등 반시장적 정책을 원상복귀시킬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조 국장은 지난해 하반기 재경부 차관보로 승진이 내정됐다가 과거 음주운전이 문제가 돼 승진에서 제외됐었다.

한편 산자부와 재경부는 국정브리핑 기고에 대해 "경제위기에 대한 불필요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기 위한 차원이며 청와대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혀왔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