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의 이미지로 완벽한 바람 표현

2006년 9월 말. 삼성전자 국내영업사업부 마케팅커뮤니케이션그룹 회의실. 광고대행사인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의 권문석 본부장은 삼성전자로부터 새로운 주문을 받았다.내년 초에 출시되는 하우젠 에어컨 신제품에 대한 CF광고와 펜네임(제품명) 등의 통합 마케팅 전략(IMS:Integrated Marketing Strategy)을 짜달라는 것.
제품 출시까지는 4개월의 기간이 남았지만 권 본부장은 적지 않은 압박을 느꼈다. 삼성전자와 일을 한 게 3년이 지났지만 이번 신제품에 대한 삼성전자의 기대는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2007년도 신제품은 에어컨 업계에선 금기시하던 검은색을 바탕색으로 쓰는 등 파격적인 디자인을 적용한 것 외에도 바람의 세기, 방향, 쾌적성 등 기능 면에서도 노력의 흔적이 역력했다. 너무나 전달할 내용이 많은 이 제품을 어떻게 소비자에게 간단하고 명료하게 전달할지에 대한 것이 휘닉스 측의 고민이었다.
1개월 동안의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에어컨 판매사원은 물론이고 주부, 직장인 등 일반인들을 불러들여 개별 인터뷰, 워크숍 등을 열고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사에서 나온 결론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소비자들이 에어컨을 살 때 냉방력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신제품에 대한 마케팅의 초점도 당연히 한층 개선된 냉방력에 맞춰져야 한다는 실마리가 제시됐다. 그렇다면 냉방력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가? 신제품의 냉방력은 ‘통바람’ 문을 통해 더욱 강력해진 서라운드 입체바람과 이중 바람 날개로 바람의 방향을 섬세히 조정해 냉방 사각지대를 없앤 게 핵심이다. 거기에 비행기 청정기에 쓰이는 슈퍼 청정 필터, 수면 패턴에 맞게 온도를 조절하는 열대야 쾌면 시스템을 적용해 ‘깨끗하고 쾌적한 바람’을 표방하고 있다.
“난상토론을 벌이던 중 신제품이 표방하는 ‘빈틈 없으면서도 깨끗하고 쾌적한 바람’은 신만이 만들 수 있는 것 아니겠냐는 농담반, 진담반의 의견이 나왔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습니다. ‘바람의 여신’은 이렇게 나온 것이죠”(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배성자 기획3팀 차장).

3단계로 짜여진 치밀한 광고 전략

장진영의 ‘바람의 여신’ TV 광고도 이런 기획 의도와 궤를 같이 한다. 이 광고는 고대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궁전 안을 비추면서 시작된다. 검은색 바탕의 에어컨 ‘통바람문’에서 찬 바람이 쏟아지고 궁전 안으로 빠르게 퍼져나가 꿈꾸는 듯한 자태로 서 있는 장진영을 깨운다. 장진영은 흰 드레스 자락을 날개처럼 펼치고 우아하게 날아올라 궁전 곳곳을 누비다 결국 바람의 진원지인 에어컨에 내려와 신기한 듯 에어컨을 쓰다듬으며 신을 마무리한다.
배 차장은 “눈처럼 하얀 궁전과 흰 드레스 차림의 장진영과 검은색 에어컨의 색감을 대비시키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며 “또한 탄생 신화 등에서 자주 나오는 하늘이 갈리고 구름이 빨리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밑에 천을 깔고 천을 광풍기로 나부끼게 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광고는 2005년부터 에어컨 모델로 활약해 온 장진영을 그대로 투입했다는 점에서 큰 변화를 시도 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밑에 깔린 전략은 한층 심화됐고 치밀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해까지의 삼성전자 에어컨 광고의 핵심은 신제품의 새로운 기능 등 고유한 판매 포인트(USP:Unique Selling Point)를 소개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해 새 광고부터는 단순히 기능을 나열하기보단 ‘바람의 여신’이란 의인화된 이미지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휘닉스 권중호 상무는 “2년간의 광고를 통해 많은 소비자들이 ‘구석구석 시원한’ 서라운드 에어컨의 기능적 장점은 알게 된 것으로 파악했다”며 “이젠 일일이 새 기능을 알려주기보다는 시각적으로 고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고 보다 제품에 대해 친숙도를 높게 해주는 작업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판단에 따라 바람의 여신 캠페인은 △관심·흥미 유발 △관계 형성 △제품 편익의 전달 등 3개의 단계로 구성됐다. 지난 1월 나온 TV 광고는 바람의 여신의 탄생을 대중에게 알리고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켜 첫 단계를 충족시켰다.

삼성전자와 휘닉스 측은 3월에는 그 다음 단계인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친숙한 관계 형성을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우선 케이블TV 채널인 tvN을 통해 주부들을 대상으로 ‘바람의 여신 선발대회’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자신만의 개성과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주부를 서바이벌 게임 방식으로 선발해 그리스로 보내준다. 이는 에어컨의 주소비층인 주부들이 선망하는 슈퍼우먼형 주부와 ‘바람의 여신’을 동일화시키는 전략이다. 이와 함께 국내 유명화장품 회사와 제휴를 맺고 올 여름 ‘여신 화장법’을 전파할 방침이다. 백화점 매장과 삼성전자 가전매장을 찾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실시해 바람의 여신에 대한 입소문을 내겠다는 생각.
마지막 단계는 바람의 여신 TV 광고 2편을 내보낼 전략이다. 1편이 신비감과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데 주안점을 뒀다면 2편은 신제품이 실제적으로 얼마나 시원한지 집안 곳곳이 시원해지는 모습 등을 담아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계획이다. 권 상무는 “3단계를 거쳐 에어컨 성수기인 5~6월께면 소비자들의 심리에 실제로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콘셉트는 잡았지만 구체적인 스토리는 아직 구상중”이라고 운을 뗐다.

삼성전자·휘닉스, 남다른 팀워크도 한몫

바람의 여신 캠페인에서 드러났듯 삼성전자 마컴그룹과 휘닉스의 팀워크는 남다른 점이 있다. 대부분의 광고주들이 브랜드에 대한 기획을 자체적으로 끝낸 뒤 대행사에 그에 걸맞은 광고전략을 짜줄 것을 요구하는 데 반해 두 회사는 마치 삼성전자 백색가전(에어컨, 드럼세탁기, 김치냉장고 등) 분야에서의 하나의 부서처럼 상품 기획부터 일을 분담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독특한 문화는 지난 2002년 삼성전자 백색가전 브랜드 통합 과정에서 굳어진 것이다. 당시 삼성전자 백색가전 분야는 아이템 별로 다른 브랜드 명을 갖고 있었다. 에어컨의 경우 ‘블루윙’이라는 이름을, 드럼세탁기는 ‘수중강타’, 김치냉장고는 ‘다맛’ 등 개별 브랜드를 갖고 있었다. 삼성전자 마컴그룹은 백색가전의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브랜드 통합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휘닉스는 인테리어의 한 부속물로서 백색가전이란 개념에 착안해 ‘하우젠’이란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들어 내 화답했다.
삼성전자에서 시작된 브랜드 통합 바람은 경쟁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4년 초 대우일렉은 에어컨, 드럼세탁기, 김치냉장고, 냉장고 등 4개 제품에 ‘클라쎄’라는 통합 브랜드를 달았다. 그해 9월 LG전자도 김치냉장고, 광파오븐, 식기세척기 등 주방 가전을 ‘디오스’라는 브랜드로 합쳤다. 삼성전자 마컴그룹 권혁민 차장은 “우리나라처럼 백색가전 분야에서 소비자들이 회사 이름보다 개별 브랜드로 제품을 인식하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며 “통합브랜드가 우리나라 백색가전 경쟁력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본다”고 자평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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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과 e메일 인터뷰

“광고는 배우의 변신기회”

삼성전자 하우젠 에어컨의 최장수 광고 모델인 것으로 안다. 어떤 요인 덕분이라 생각하나?

“삼성과의 첫 인연은 4년 전쯤 시작된 것 같네요. 광고 모델로서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 듯 합니다. 한 업체의 모델로 장기간 활동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무한한 신뢰를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최장기 모델이 된 것도 고객사로부터 이 같은 신뢰를 받은 덕분이겠죠.”

과거 영화 ‘싱글즈’에선 털털한 이미지였다면 삼성전자 모델로 활동한 후론 보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로 바뀐 느낌이다.

“2003년 작품 싱글즈는 대중들에게 한발짝 더 다가서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때 이미지를 생각하는 대중들이 많은 듯 합니다. 나쁘다고 생각진 않지만 배우로서 한 이미지로 굳어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봅니다. 관객들에게 항상 새로운 연기와 발전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배우들의 목표이기 때문이죠. 그런 맥락에서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의 모델로 기회를 준 삼성전자에 오히려 감사할 일이 아닌가 싶어요.”

이번 광고 촬영 도중 어려운 점은 없었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8시간 동안 와이어에 묶여 있어야 했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러면서도 표정에 신경을 써야 했고요. 물론 오래 전에도 촬영 때 잠깐 매달린 적이 있긴 한데 이번에는 장시간이라 더욱 더 힘들었죠. 다음엔 영화든 CF촬영이든 메달리는 신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자기 관리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

“영화를 촬영할 때는 적게는 3개월 길게는 7~12개월 동안 매진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영화, 드라마, 책, 운동, 여행, 음악, 공연 등 놓치는 게 많습니다. 모처럼 휴식 기간에 못했던 것들을 하며 주로 집에 머무르며 지낸답니다.”

장진영 하면 ‘스타일이 뛰어나다’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자신만의 스타일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스타일이란 일단 자신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게 중요하고 또한 스스로를 가장 잘 알면서 그에 맞게 스타일링 하는 게 가장 ‘베스트’라 생각합니다.”

5월에 생일이 있는 것으로 안다. 생일선물로 받고 싶은 건 무얼까?

“아직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 생일을 기억해주고 축하해 주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고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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