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저는 남을 이끌 사람이 아니에요. 뼛골 빠지게 일이나 하고 결국 쓰레기통 속에 처박히는 세일즈맨에 불과해요.우리 둘은 시간당 1달러짜리밖에 안돼요. 쓸모없는 인간이란 말이에요."

아서 밀러 원작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의 한 대목이다. 저임금 일자리도 없던 미국의 대공황 시절,개인의 삶은 시대가 이렇게 비극으로 만들었다.

한국의 직장사회를 바라보며 새로운 제목을 지어보면 '예스맨의 죽음' 정도가 어울릴 것 같다. '예스맨'으로 불러줄 만한 구시대 인재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사람들은 이 제목만 보면 이렇게 해석할지 모른다.

"일에는 머리를 안 쓰고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데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들, 아랫사람들의 어려움은 신경쓰지 않고 윗사람이 시키는 것을 다 받아오는 간부들이 이제 없어지고 있구나."

반쯤은 맞는 얘기다. 사실 외환위기 직후의 우리 직장 사회는 세대 간의 권력 경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30∼40대들이 40∼50대를 밀어내는 과정이었다는 얘기다. 뒷물결들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논리에 이 예스맨 비유가 동원됐다. 창의성이 필요한 시대가 된 만큼 구시대의 노하우와 경험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는 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재상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엉뚱하고 창의적인 신세대였다. 대기업들이 신춘문예 당선자, 게임대회 입상자까지 뽑으면서 이런 분위기를 선도했다. 신입사원 면접 때 노래도 부르고 춤까지 추는 일이 생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퍼져가면서 '예스맨'들은 밀려나면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예스맨의 죽음'이 가져온 효과는 오히려 부정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근로의욕이 땅에 떨어지고 이제 직장 사회는 물론 군대에서도 '영(令)'이 서지 않는 일이 일반화됐다. 인쇄업체를 하는 모 사장은 "어쩌다 토요일 근무를 한번 시키려면 직원들 눈치 보면서 사정사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예스맨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부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회사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예스맨이 사라지면서 함께 없어지는 것이 바로 "예,한번 해보겠습니다"와 같은 자세다. 도전과 모험정신이라고 이름 붙여줘도 된다.

실제 회사에서 출세를 하는 사람들은 절대 '노(No)'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한경의 금요기획 'CEO들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읽어보라. "입사 이후 10년 동안 휴가를 간 적이 없고,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던"(남상태 대우조선해양사장) 우직한 사람들이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인재다.

또 예스맨의 덕목이 필수적인 분야가 분명히 있다. 군대나 경찰,소방서를 떠올려보라. 고장 한번에 폭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화학공장에서는 어떨까.

선진국 문턱에서 수년째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직업윤리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개인보다는 조직의 미션에 충실하며 팀워크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정신이 아닐까. 지금과 같은 무의욕의 시대엔 차라리 출세욕에 불타는 예스맨들이 더 많아 졌으면 좋겠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