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인 대본 대신 관객 반응 따라 즉석 개그
'서울나들이' '최국의…' '마빡이' 등

"박수치지 말고 웃~어요. 웃어요! 허파 디비지네~"

11일 첫선을 보인 SBS TV 개그프로그램 '웃찾사'의 새 코너 '서울 나들이'의 이동엽은 방송 내내 방청객에게 "웃어라"라며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이래도 안 웃기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표정으로 관객에게 반문했다.

또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른 이광채는 이동엽과 대조적으로 완전무결한 무표정을 지은 채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이 역시 객석을 향해 웃어 달라는 것.
관객은 신인인 듯한 이들 개그맨의 뻔뻔한 요구에 처음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거리를 찾아 상경한 두 부산 사내의 황당한 행동과 사투리가 속사포처럼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 "웃어라"라는 요구가 반복되자 종국엔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 나들이'는 이날 방송 직후 포털 사이트 검색순위 1위에 오르는 등 '코너 대박'의 기쁨을 맛봤다.

MBC TV '개그야'의 '최국의 별을 쏘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마빡이'에 이어 '서울 나들이'가 애드리브로 승부하는 개그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사와 동작은 물론, 웃음의 타이밍까지 계산하는 기존 개그 코너들과 달리 관객의 반응과 함께 그날의 개그를 완성시키는 '애드리브 개그'가 요즘 각광받고 있다.

◇기본 설정뿐, 나머지는 관객 반응 따라


애드리브 개그의 특징은 캐릭터와 상황 등 기본 설정만 정해놓고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다.

'최국의 별을 쏘다'는 자아도취에 빠진 배우 죄민수(조원석 분)가 토크쇼에 출연했다는 설정만 잡아놓았다.

죄민수는 자신이 'MC계의 수레기(쓰레기)'라 부르는 MC를 사사건건 면박주며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발굴한다.

관객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곧바로 화제를 돌리거나 자신이 유행어로 밀고 있는 "피~쓰"를 외치며 분위기 전환을 시도한다.

그가 고정적으로 쓰는 '무기'는 중간중간 "왜?"냐는 질문을 받을 때 "아~무 이유 없어"라고 잘라 말하거나 객석을 향해 "여러분 난 누구?"라고 묻는 것 정도. 나머지 대화 내용은 대본에 없다.

상황은 '마빡이' 역시 마찬가지. 이마가 벗겨진 대머리 가발을 쓰고 나온 골목대장 마빡이(정종철)가 쉼없이 이마를 때리며 한바탕 떠들고나면 막판에 갈빡이(박준형)가 등장한다는 설정만 정해졌다.

이 코너 역시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여기에 '서울 나들이'가 가세했다.

일거리를 찾아 상경한 단순하고 무지하며 순박한 부산 사나이 둘이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다.

이동엽과 이광채가 부산 사나이를, 박영재가 이들을 인터뷰하는 직업 소개소 직원을 연기한다.

11일 첫 방송에서 이들 셋은 무려 8분여를 대본 없이 끌고나가는 '괴력'을 발휘했다.

이와 함께 '웃찾사'의 '그만해'나 '개그콘서트'의 '불청객2' 등도 애드리브가 많이 가미된 개그로 알려져 있다.

개그맨 전문 소속사 컬트엔터테인먼트의 이정필 팀장은 "애드리브 개그 코너는 정형화된 형식이나 틀을 파괴하고 공연자의 돌출 행동과 발언으로 승부를 건다.

그것이 객석의 생생한 반응과 어우러져 요즘 각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애드리브? 사실은 더욱 철저한 준비


애드리브 개그라고 하지만 사실 그 뒤에는 대본에 의존한 개그보다 몇 배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준비해놓고 상황에 따라 재빠르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
'웃찾사'의 박상혁 PD는 "애드리브라고 하지만 사실은 철저한 준비가 바탕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젠 대중이 개그 전문가 수준입니다.

그 때문에 짜인 공식 아래 진행되는 개그에는 이제 웬만해서는 잘 반응을 하지 않지요.

대중이 개그맨의 다음 동작이나 대사를 짐작할 수 있게 되면 더이상 안 웃기거든요.

단순 말장난 개그도 이제는 안 먹힙니다.

그래서 여러 상황을 준비해놓고 관객의 반응에 따라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애드리브 개그가 뜨는 것 같습니다."

◇신인? 대학로 무대서 오랜 기간 단련

'마빡이'는 이미 개그계 정상의 위치에 올라 있는 정종철과 박준형이 주인공이라는 점 때문에 사실 다른 코너에 비해 유리한 점이 있다.

같은 말, 같은 행동이라도 유명인, 인기인이 할 때의 느낌은 일반인과 다르기 때문. 일종의 '웃음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그와 비교하면 '서울 나들이'나 '최국의 별을 쏘다'는 신인들의 당당한 승리라는 점에서 비교되는 듯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상혁 PD는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방송에서는 신인이지만 사실 이들은 신인이라 할 수 없지요.

대학로 개그클럽 등에서 오랜 기간 관객을 상대해왔기 때문입니다.

무대 위에서 관객과 호흡하는 데 오래 단련됐다는 의미지요.

예전에는 애드리브 개그를 할 수 있는 개그맨이 컬투 정도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많은 개그맨들이 1천~1천500명의 방청객 앞에서도 '뻔뻔하게' 자신의 개그를 밀어붙일 수 있는 내공을 갖추고 있습니다."

첫 방송에서 관객이 웃지 않아도 "웃어라"라고 주눅 들지 않고 밀어붙인 '서울 나들이' 팀이나 다소 코너에 몰린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코를 킁킁거리며 "피~쓰"를 외치는 죄민수 조원석은 모두 무명 기간 다진 만만치 않은 내공이 있다는 설명.
박 PD는 "그러나 애드리브 개그의 인기가 개그맨의 인기와 비례하는 측면이 있는 만큼 일단 코너가 인기를 끌게 되면 개그맨들의 애드리브에 대한 객석의 반응은 더욱 열광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