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을 못 구한다고? 그럼 우리가 찍는다."

농업 재벌인 카길이 2년 전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썼던 처방이다.

현지에서 고용한 농부들에게 지불할 돈이 부족한데 구할 곳이 없자 카길은 결국 '자체 현금'이라는 기발한 응급 카드를 꺼냈고,이것이 대성공을 거뒀다.

액면가 1달러로 고정된 지참인불 수표였지만 인플레로 공식 화폐가 유야무야 돼버린 그 나라에서 사실상의 법정 통화가 됐다.

발행한 지 며칠 안 돼 전국 도소매상에서 유통됐고 농부들의 수확물에도 정당한 대가를 치를 수 있었다.

'이노베이터의 10가지 얼굴'(톰 켈리 외 지음,이종인 옮김,세종서적)은 혁신적 사고로 역경을 정면 돌파한 카길 같은 유형을 '허들러'(The Hurdler)라 부른다.

회사의 냉대 속에서도 끈질긴 연구로 스카치 테이프를 개발해 3M의 전설로 불리는 리처드 드류,과학적 훈련을 통해 장애물 경기에서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빨리 뛰는 허들 선수 에드윈 모제스도 동일 모델.

엉뚱하면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컨셉트를 기업에 접목시키는 사람은 타화수분자(他花受粉者·다른 꽃의 꽃가루를 받는 사람),기존 사물이나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부자 데'(Vuja de) 감각의 소유자는 조직에 학습 기회를 부여하는 문화 인류학자로 분류했다.

팀원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무대 연출가,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전하는 스토리텔러 유형도 일단의 혁신가로 꼽힌다.

저자는 이노베이션이 뿌리 내리면 제조업체는 물론 병원,대학,심지어 장의사도 엄청난 매출과 성장을 구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평범한 영웅들'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크래프트,P&G,세이프웨이,삼성의 개혁 사례를 통해 이 문화의 궁극적 목적이 '감동 추구'에 있다는 주장도 신선하다.

커피가 아닌 편안함을 파는 스타벅스,만화영화가 아닌 행복을 파는 디즈니처럼.'사업에도 성공하고 인간적으로도 성장하려는' 사람이라면 손길이 갈 만한 책이다.

412쪽,1만6000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