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5일 신년회견에서 탈당 카드를 또다시 꺼내들었다.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을 조건으로 야당이 요구한다면 탈당할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했던 노 대통령이 이번에는 여당이 신당 추진에 걸림돌로 생각한다면 당적을 이탈할 수 있는 입장을 표명한 것. 표면적으로 조건을 내거는 `주체'가 뒤바뀐 셈이다.

노 대통령은 회견에서 "대통령의 당적정리가 (신당의) 조건이라면 내가 당을 나가는 것이 좋은 일 아니겠느냐"며 "제게 그런 뜻을 전해주던지, 대통령 없으면 이 당에 앉을 테니까 당을 나가달라고 하면 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이 스스로 앞장서서 탈당하지는 않겠지만 열린우리당 중심의 신당창당에 필요하다면 굳이 당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조건부 탈당의사'를 밝힌 셈이다.

물론 노 대통령이 이미 개헌을 조건부로 탈당 카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충격파는 다소 덜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적인 의미와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무엇보다도 탈당을 통한 신당추진 쪽으로 급류를 타고 있는 여당 내 논의의 흐름에 적지 않은 기류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탈당을 언급하면서 신당을 만들어 지역당을 하지 않을 바에야 현재의 열린우리당으로도 중도통합 등이 가능하다고 강조함으로써 우리당의 틀은 온전히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노(反盧) 내지 비노(非盧)'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신당추진파 입장에선 노 대통령의 탈당 시사발언이 신당추진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급작스럽게 불붙은 탈당 도미노 현상에도 제동을 거는 효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듯 보인다.

당장 신당파 내부에서는 "예정된 수순 아니냐"라고 애써 담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내심 "허를 찔렸다"는 듯 당혹해하는 분위기이다.

한 재선의원은 "일단 논의를 해봐야 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반면 `질서있는 통합신당'을 모토로 내걸고 있는 당 사수파와 중도그룹은 신당추진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으로 포착된다.

물론 사수파의 주축인 친노(親盧)진영으로서는 노 대통령의 탈당으로 심리적 타격을 얻을 수 있지만 자신들의 영향력이 유지되는 `분열없는 신당' 추진이 쉬워졌다는 점에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9일로 예정된 중앙위원회와 2.14 전당대회가 `파행없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신당파내 선도탈당파를 중심으로는 "노 대통령의 탈당과 무관하게 당을 떠나야 한다"며 반발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어 당내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