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규호(號)'가 외풍에 흔들리고 있다.

분양가 원가 공개 확대,이자제한법,하이닉스 공장 증설 문제 등 굵직굵직한 정책의 결정과정에서 권오규 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재정경제부가 시장경제 소신을 펴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의 해를 맞아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벌써부터 경제논리가 정치논리에 밀리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대선이 가까울수록 정치논리가 더욱 득세할 것인 만큼 포퓰리즘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치 논리에 권오규호를 끌어들여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권오규호 원칙은 어디에?

참여정부 경제팀의 사실상 마지막 선장으로 임명된 권 부총리는 지난해 7월 내정 직후부터 시장경제를 수호할 적임자라는 진단을 받아왔다.

대표적인 분야가 부동산정책.그는 민간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 확대 및 민간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에 대해 부작용을 들어 줄곧 반대입장을 밝혀왔다.

지난해 12월27일 당정협의에선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한 상황에서 분양원가까지 공개할 경우 지나친 규제가 될 것"이라고 원가 공개엔 강력히 저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1·11대책에선 이 같은 권 부총리 목소리는 사라지고 분양원가 공개까지 포함됐다.

권 부총리는 이에 대해 "일반 국민의 분양가 인하 및 분양원가의 투명한 공개 요구가 높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압박이 권 부총리의 목소리를 압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치권에서 제기한 반값 아파트론도 마찬가지.재경부는 한나라당의 '토지임대부 방식'과 열린우리당의 '환매조건부 방식' 모두 재정부담이나 사회적 문제 야기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반대입장을 밝혀왔지만,최근 시범실시에 동의하고 말았다.


○이자제한법도 같은 길 걷나

이자제한법은 이자 최고 한도를 법에다 정해놓는 것을 말한다.

1962년 제정됐다가 외환위기 당시인 1988년 폐지됐다.

지난해 법무부가 이 법의 부활을 추진했으며 지난해 10월 열린우리당 이종걸 의원 등 22명이 40%로 제한하는 법률을 발의했다.

권 부총리는 지난해 10월1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자제한법이 다시 시행되면 대부업자가 음성화되고 자금공급이 줄어 오히려 서민들의 부담만 커진다"는 요지로 반대입장을 밝혔다.

재경부는 법이 부활돼도 실제 사금융 금리가 낮아지는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이 이슈를 들쑤시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재경부 당국자는 "정치권과 시민단체 학계 등에서 현행 최고이자(66%)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이를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자제한법을 부활할지 대부업법을 개정할지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으며 실태조사 후 방침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이닉스 이슈도 미적

하이닉스 이천 공장 증설에 대해 권 부총리는 추석 직전에만 해도 "하이닉스 논란이 종식되지 않아 기업환경개선대책의 효과가 반감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결론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재경부와 산업자원부 등 관계부처는 하지만 11월까지 결론을 내기로 했다가 세 차례나 미뤘다.

환경부 등이 이천 증설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지방자치단체가 나서 공장 유치전을 펴면서 정책 결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훼손하지 말라는 청와대의 요구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이천과 청주 주민들이 공장 유치를 위해 집회로 맞대응하는 상황에 이르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