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뉴질랜드의 '경제 수도' 오클랜드로 이민을 온 김미경씨(38).현재 둘째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

맞벌이인 김씨는 "한국에 있었다면 둘째 아이를 임신하기 전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라며 "임신한 날부터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집중관리를 받고 있어 걱정이 하나도 안 된다"고 말했다.

출산율이 1.96명(2005년 기준)인 뉴질랜드는 출산·육아 인프라가 잘 돼 있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걱정이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

유럽 국가들도 뉴질랜드의 출산·육아 인프라를 벤치마킹할 정도다.

◆전담 조산사,임신~출산 집중관리

그렇다면 뉴질랜드의 어떤 인프라가 주효했을까.

비결은 임신 때부터 정부가 원스톱으로 임산부와 아이를 돌봐주는 '특별 관리'에 있었다.

그 과정은 이렇다.

산모가 병원에서 임신 사실을 통보받으면 즉시 병원에 소속된 전담 조산사(midwife)가 지정된다.

이 조산사는 산모의 건강은 물론 임신관리·출산까지 책임지게 된다.

산모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카운셀링은 기본이다.

자연 분만과 모유 수유의 중요성을 집중 강조하는 것도 이 기간이다.

출산 후 6주 동안 부모를 대상으로 '육아 교육'까지 시켜준다.

산모는 언제든지 조산사를 중도에 바꿀 수 있다.

초음파 검사를 포함해 각종 검진과 출산비용까지 모두 정부에서 지원해준다.

산모는 아이를 임신하는 순간부터 적어도 '돈 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산모가 병원에 들르기 어려우면 조산사가 직접 집을 방문하기도 한다.

오클랜드시 폴런병원 관계자는 "출산 후 아이를 목욕시키는 방법이라든지 기저귀 갈아주는 법 등을 산모와 남편 모두에게 지속적으로 교육시켜 준다"면서 "산모가 산후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출산시기가 비슷한 여성들과 커피 모임을 주선하는 것도 병원과 조산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유럽국가들도 벤치마킹

산모가 조산사 대신 일반 의사를 출산 보조자(LMC)로 선택할 수도 있다.

질병을 앓고 있는 등의 특수한 경우다.

뉴질랜드에선 산모의 20~30%만이 일반 의사를 출산 보조자로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의 출산·육아지원 시스템은 유럽 등 복지 선진국에서도 벤치마킹하고 있다.

뉴질랜드 시스템이 그만큼 앞서 있다는 증거다.

오클랜드 노스쇼어병원의 다이앤 허스트 조산사는 "유럽에선 산모가 조산사를 고용하려면 대개 사비를 내야 하기 때문에 뉴질랜드보다 복지 측면에서 뒤떨어져 있다"면서 "특히 영국의 경우 뉴질랜드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영국 조산사 출신인 그는 "뉴질랜드에선 조산사에 대한 대우가 매우 좋아 유럽의 조산사들이 뉴질랜드 취업이민을 희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들이 출산 후 '일'에 복귀하고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녀를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도 뉴질랜드의 자랑거리다.

여성들이 출산휴가 후 똑같은 자리에 되돌아올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수년 전 헤드헌팅 업체에 근무하던 여직원이 출산휴가 후 자신을 다른 업무에 배치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회사가 결국 수만달러의 배상금을 물어줘야 했다.

◆출산 투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

루스 다이슨 뉴질랜드 노동부 장관은 "직장 여성들이 임신·출산 후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면 누가 아이를 낳겠는가"라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일하는 여성들이 출산 후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딕 허바드 오클랜드시 시장은 "출산·육아를 지원하는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당연한 역할"이라며 "젊은 부부들의 주택 수요도 늘고 있어 도심 내·외부에 집을 많이 지을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뉴질랜드는 이런 투자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을까.

김미경씨는 "뉴질랜드의 근로소득세율은 39%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혜택을 받고 있고 정부나 개인 간에 고통분담이 이뤄지고 있다는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다.

뉴질랜드는 1980년대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과감한 정부 개혁에 나섰고 여기서 발생한 여력으로 출산투자에 나섰다.

1960년대 3명대에 이르던 출산율이 젊은이들의 출산 회피로 1.8~1.9명대로 떨어지면서 대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허바드 시장은 "노동당 정부의 개혁으로 1999년 이후 연 평균 3.6%의 경제성장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저인 실업률(3.4%)을 유지하는 것도 높은 출산율의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개혁에 성공한 노동당 정부는 현재 3기 연속 집권 중이다.

오클랜드(뉴질랜드)=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