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량 감독의 서사극 '묵공'은 알맹이 없는 비주얼 위주의 중국 판타지 무협영화와 완전히 다르다.
이 작품은 그동안의 동아시아 합작 영화 중 가장 빛나는 성과임에 틀림없다.
한국 보람영화사(대표 이주익)를 비롯해 중국 홍콩 일본 제작자들이 160억원을 투자한 이 작품은 다국적 자본의 결합뿐 아니라 인적 결합에도 성공했다.
중국 배우 류더화 판빙빙 등과 한국 배우 안성기 최시원 등의 호연이 매끄럽게 조화됐다.
영화는 2500여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묵가의 삶과 철학을 풍성하게 펼쳐 놓는다.
조나라 10만 대군을 이끄는 항엄중(안성기)이 천하통일을 위해 인구 4000명에 불과한 양성을 치려할 때,이웃 묵가군의 혁리(류더화)가 단신으로 수성(守城)을 돕기 위해 찾아온다.
혁리는 왕과 백성들이 조군에 대항하도록 설득하고 치밀한 전략을 세운다.
혁리의 수성전략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고전영화 '7인의 사무라이'를 연상시킨다.
한 사람의 지략으로 대군을 퇴치하는 장면들이 대표적이다.
'7인의 사무라이'가 사무라이 정신을 담았던 것처럼 이 작품은 묵가의 평화사상을 포착해 낸다.
적을 먼저 공격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침략당할 때에는 방어적인 전쟁을 지지하는 비공(非攻)사상,남을 나처럼 아끼고 이웃 국가와 자기 나라를 동일시해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겸애(兼愛)사상이 전편에 깔려 있다.
'7인의 사무라이'와 다른 점은 적장을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낸 것.최후의 전투에 패배한 항엄중은 비록 적장이지만 전쟁영웅이다.
전쟁영화임에도 선과 악의 이분법을 뛰어넘은 것이다.
또 혁리는 탁월한 사상가이자 지략가이지만 남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낮은 자리에서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의 행동은 21세기에도 통하는 리더십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12세 이상.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