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적 자세로 임기말 `권력누수' 차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6일 작심한듯 고 건(高 建) 전 총리를 향해 '노기'를 표출하면서 "앞으로는 공격에 하나하나 대응하고, 할 말도 다할 생각"이라며 공세적인 태도를 보이고 나섰다.

지난 23일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나는 그를 나쁘게 한 일이 없다.

사실을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고 나를 공격하니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유감'을 표시하는 선에 훨씬 더 나아간 발언이다.

특히 노 대통령은 고 전 총리의 언행을 사실상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규정하고, "분하다"는 표현까지 동원함으로써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노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그 분을 비방하거나 비판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두번 세번 해명을 했는데도 전혀 미안하다는 표정이 없어서 섭섭하다는 말씀을 꼭 좀 드리고 싶다"고 했다.

특히 '뒤가 깨끗한 술이 좋은 술'이라는 비유를 사용하며, 참여정부 초대총리를 지냈던 인물이 자신을 향해 차별화를 시도하고, 비판의 깃발을 내건 행위를 `뒷모습'이 좋지 않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요즘 대통령이 동네북이 되어 있다.

저는 이것을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또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받아들인다"고 전제한 노 대통령은 "그러나 그렇게 해도 좋은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하면 안되는 사람들도 있다"며 운을 뗐다.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 대통령을 동네북처럼 이렇게 두드리면 저도 매우 섭섭하고 때로는 분하다"고 말해 고 전 총리를 겨냥했다.

초대 총리로서 국정에 깊숙이 관여하며 한솥밥을 먹었던 고 전총리가, 자신과 참여정부를 향해 비난을 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해양수산부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 대해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그리고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에도 정치 전략으로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일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특히 노 대통령은 "재직중에는 제가 좀 할말을 하고 할 말 못할 말 해서 좀 시끄러웠던 일이 있었지만 그만두고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 은연중에 고 전총리가 총리 재직중에는 '할 말'을 하지 않았다가 참여정부의 인기가 떨어진 지금에 와서야 이런 저런 말을 하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노 대통령은 이른바 정치적 금도, 공무원으로서의 도덕률, 신의 문제 등을 연상시키는 말을 함으로써 `평통발언'후 진행된 청와대와 고 전 총리간 공방전의 초반열세를 일거에 뒤집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국민적 인기도 정치적 신의를 져버린다면 일시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노 대통령은 주장하고 있는 듯하며, 이는 고 전 총리의 이미지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성탄절을 고비로 양측의 대립이 소강상태를 보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노 대통령이 곧바로 고 전총리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 것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 전총리에 대한 정치적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분석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특히 정치적 입지 확보를 위한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에 분노를 표출한 것은 고 전 총리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지만, 여권의 다른 대선주자들을 향한 메시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열린우리당내 대선주자이자, 통합신당론 논쟁을 계기로 노 대통령과 노선을 달리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김근태(金槿泰) 의장이나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도 모두 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장관과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각료 출신이다.

여당내 신당론자를 중심으로 '선도탈당'론이 제기되고,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부쩍 많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고 전총리를 '시범 케이스'로 삼아 여타 예비주자들에게도 `학습효과'를 주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임기 1년여를 남긴 시점에서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좌시할 경우, 임기 마지막해인 내년도 국정운영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이날 "그동안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아왔고, 참아왔지만 앞으로는 하나하나 해명하고 대응할 생각이다.

할 일도 열심히 하고 할 말도 다할 생각"이라고 국정 운영에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며 결연한 의지를 다진 것도 이 같은 분석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서울연합뉴스) 성기홍 기자 sg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