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벼랑끝 전술'이 통할까.

한국측 협상단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에서 초강수를 던졌다.

무역구제 분과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기 위해 미측 관심 분과인 자동차 의약품 회의까지 중단한 것이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측이 연말까지 의회에 보고할 무역구제 보고서에 한국측의 반덤핑 관련 요구사항을 담지 않을 경우 이들 핵심 분과는 논의 진전이 불가능해 전체 협상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반면 미측이 일부라도 수용할 경우 한국측이 자동차 분야 등에서 양보하는 등 협상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크다.

양측의 협상 의지가 강해 현재로선 후자의 가능성이 높지만 전자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한·미 FTA 협상은 사실상의 시한인 3월 말까지 타결이 불가능하다.


○연말 시한 앞두고 '벼랑끝 전술'

미국의 반덤핑제도 개선은 정부가 한·미 FTA에서 가장 크게 기대한 분야 중 하나다.

미국의 무역구제 법규정을 바꾸려면 미 행정부가 늦어도 올해 말까지 미국 의회에 변경 의사를 통고해야 하는 만큼 사실상 이번 협상은 마지막 기회였다.

때문에 한국측은 전날 5가지 요구사항을 압축해 답변을 달라는 최후통첩을 보냈고 미측이 확실한 언질을 주지 않자 초강수를 뒀다.

웬디 커틀러 미측 대표가 "일괄적으로 수용 여부를 묻는 한국의 태도가 비합리적"이라고 반응할 정도였다.

한국측은 무역구제 분과뿐 아니라 자동차와 의약품 작업반 회의까지 모두 중단했다.

협상단 관계자는 "당초 무역구제는 우리 요구로,자동차와 의약품 작업반은 미측 요구로 설치한 것"이라며 "무역구제에서 진전이 없으므로 자동차와 의약품 회의도 더 이상 진행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위기지만 기회될 수도

일단 핵심 분과 회의가 중단됨에 따라 5차 협상은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그렇지만 당장 협상이 결렬되는 것은 아니다.

즉 양측이 링을 떠났다기보다는 링위에서 고도의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실제 나머지 14개 분과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무역구제는 미측이 연말까지 낼 무역구제 관련 의회보고서에 '한국과 현재 이러한 내용을 협의하고 있다'는 내용만 넣으면 다시 협상 여지가 생긴다.

구체적인 내용은 전체 협상 타결 때까지 협의하면 된다.

커틀러 대표도 "워싱턴에 돌아가면 연말까지 의회에 제출할 보고서에서 한국의 제안을 넣을지 면밀하게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타협 여지를 남겼다.

김종훈 대표도 "우리 입장의 강도를 전달하기 위한 조치였다"며 "커틀러 대표의 '한국측 제안을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평가하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말까지 공식·비공식 채널을 통한 양측 간 치열한 접촉이 예상된다.

현재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워싱턴에서 미 의회 의원 등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무역구제 협상이 돌파구를 찾을 경우 한국이 반대 급부로 자동차,의약품 등에서 미측 의견을 수용하고 미측도 자동차 관세 폐지 등으로 화답해 협상이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상품분과 등은 '진전'

양측 수석대표가 "나머지 분과는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할 만큼 이날 열린 14개 분과에선 상당한 진전이 나왔다.

상품분과에선 미측이 TV 카메라 피아노 등 206개 품목(교역규모 6억달러)을,한국이 플라스틱 제품 등(3억9000만달러) 204개 품목을 관세 즉시철폐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물품수 기준 즉시 철폐율은 미국이 77.4%→80.3%로,한국이 80.1%→82.5%로 올라갔다.

미국은 또 외국화물에 부과하는 물품 취급 수수료도 철폐키로 해 한국의 수출업체는 연간 4700만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지식재산권 분과에선 미측이 지재권 병행수입이 금지돼야 한다는 주장을 삭제키로 했다.

빅스카이(미 몬태나)=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