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은 어떤 일이든 일단 부딪히고 본다.

그리고 협상한다.

처음엔 터무니없어 보이는 일도 협상하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협상의 달인'.이날 이 사장이 한국경제신문 사진기자의 '캐논' 카메라를 보고 무심히 던진 이야기 속에서 이 말이 떠올랐다.

이 사장이 과거 품질관리 실장을 할 때의 일이다.

일주일짜리 함부르크 출장을 떠났다.

일을 다 마치지 못했는데 한국 상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승진할 때 필요한 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전화였다.

이사장이 "승진 안 해도 되니까 일 끝내놓고 가겠다"라고 했더니 상사가 "제발 고집 부리지 말고 오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함부르크 공항으로 향했다.

그에게는 대한항공 이코노미석 할인티켓이 있었다.

그런데 당일 함부르크에는 한국행 항공기가 없었다.

운항스케줄을 살펴보니 JAL이 보였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것이 다행이었다.

창구의 일본인 여직원에게 한참 사정을 이야기했다.

여직원은 다소 망설이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통화했다.

그러더니 "일본에서 한국 들어갈 때도 JAL을 타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JAL은 자리를 내줬을 뿐 아니라 이코노미 할인석을 1등석(퍼스트 클래스)으로 업그레이드까지 해줬다.

어쨌든 일본 나리타에서 혼자 지내야 하는 저녁.식사를 마치자 시간이 남았다.

시내구경을 나갔다.

어느 지하철역의 긴 의자에 잠시 앉았다.

마침 카메라를 파는 가게가 눈에 띄었다.

산업디자인과를 다니고 있던 딸이 생각났다.

캐논 카메라를 보면 좋아할 것 같았다.

하지만 가진 돈은 고작 140달러.가게 주인 할머니는 지갑 안을 보고 웃었다.

주인집 아들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카메라를 들고 하나하나 분해하기 시작했다.

삼각대를 제거하더니 망원렌즈도 뺐다.

렌즈도 싼 제품으로 갈아 끼웠다.

나중에는 "가죽 케이스도 안 되고 끈도 못 준다"고 했다.

결국 몸통과 배터리만 남았다.

그래도 "원가에 주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 좋아 보이던 주인은 마지막에 "공항세로 20달러는 필요할테니 120달러만 내라"고 호의를 베풀었다.

한국에 돌아온 이 사장은 돈이 생길 때마다 카메라 주인집 아들이 뺀 부속품들을 하나하나 사들이기 시작했다.

삼각대,가죽케이스,렌즈,플래시,그리고 끈.이렇게 카메라가 완성되기까지 1년 반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