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께 일이다.

당시 수출입은행 뉴욕사무소 소장이던 김정준 이사는 캐나다 밴쿠버행 야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캐나다 시스펜사가 최저금리 융자 제공을 조건으로 내걸며 10척의 컨테이너선을 발주하는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총 수출계약 금액이 6억달러가 넘는 대형 입찰인 데다 세계 최초로 건조되는 8100TEU(컨테이너를 세는 단위)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5척도 포함돼 있어 세계 해운업계의 이목이 집중된 입찰이었다.



김 이사는 시스펜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만나 총 사업비용의 80%에 해당하는 5억달러의 자금을 수출입은행이 단독으로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냈다. 결국 국내 조선업체가 입찰을 따냈고 이는 한국이 차세대 초대형 컨테이너선 시장을 선점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이 세계 제1의 조선강국으로 우뚝 선 데는 경쟁력 있는 선박금융이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했다.

조선산업과 선박금융은 '실과 바늘'같은 관계다. 선박금융은 선사들이 배를 확보하기 위해 이용하는 금융이다. LNG선 한 척 당 가격은 2억5000만달러(약 2300억원).

워낙 고가여서 선사들이 일시에 자기자금만으로 조달하기는 불가능하다. 선박금융 활용이 불가피하다. 이때 경쟁력 있는 선박금융을 제공하는 게 조선사의 수주경쟁을 가르는 관건이 된다.

선박금융은 금액이 큰 데다 기간도 통상 12년,최장 20년에 달할 정도로 장기다. 더욱이 선사들이 선박을 운용하며 올린 수익으로 원리금을 갚는 프로젝트 파이낸스(PF)로 위험부담도 큰 편이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1970년대 제3차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중화학 공업육성 정책에 의해 정부차원의 육성산업으로 채택되면서 도약의 발판을 맞았다. 이를 위해 1976년 선박수출금융 전담지원기관으로 수출입은행이 설립됐다.

수출입은행의 수출금융 지원은 1970년대 후반 이후 불어닥친 세계 조선 시장의 장기 불황을 이겨내고 한국이 세계적인 조선강국으로 부상하는 초석이 됐다.

최정하 수출입은행 선박금융부장은 "당시 국내 조선소는 선박 건조 경험도 유럽 및 일본 조선소에 비해 부족한 실정이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수출입은행을 통해 제공하는 각종 선박금융의 지원이 수출선 수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려줬다.

실제로 1970년대 후반 조선불황으로 일본 및 유럽 조선소는 연쇄 부도를 맞아 설비축소 및 통폐합에 나섰지만 한국 조선업계의 수출선 건조량은 수출입은행이 설립된 1976년 이후 1989년까지 연 평균 24.5%의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선박금융의 금리를 결정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금리가 2002년 4월 고정금리에서 국제 금융시장 금리에 연동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선박금융은 본격적으로 상업 금융기관과의 경쟁시대를 맞았다.

수출입은행은 이 위기를 첨단금융기법을 결합한 SF(Structured Finance:맞춤형 금융)라는 선박금융 신상품 개발로 돌파했다.

SF 선박금융은 선박자체담보 외에 장기운항계약과 각종 보험 등 다양한 신용 보강장치를 통해 해외 수입자의 신용상태에 구애 받지 않고 맞춤형 대출을 제공하는 첨단 금융기법이다.

국내 조선업계의 건조 경쟁력에 더해 이 같은 선박금융 경쟁력을 기반으로 2003년 이후 한국은 선박 수주량과 수주잔량,고부가가치선 수주분야 등 전부문에서 일본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세계 1위의 조선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