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15일 전효숙(全孝淑)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놓고 날선 대치를 계속한 끝에 결국 4번째 처리 시도도 무산됐다.

열린우리당은 그간 3차례나 무위에 그친 인준안 처리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전날 저녁부터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한 한나라당은 "전 후보자 임명은 위헌"이라며 타협의 여지를 보이지 않아 본회의는 오후 늦도록 개의 조차 못했다.

오후 5시40분께 의총을 마친 선병렬(宣炳烈) 조배숙(趙培淑) 의원 등 열린우리당 의원 40여명이 본회의장에 입장하면서 일순간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과 가벼운 인사말만 나누다 10여분만에 퇴장하면서 상황은 `싱겁게' 끝났다.

◇하루 종일 강경 대치 = 한나라당은 의원들을 2개조로 나눠 2시간씩 교대로 의장석을 `사수'하는 등 우리당의 기습처리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한나라당은 본회의장 밖에도 당직자와 보좌관 100여명으로 `인의 장막'을 만들어 우리당 당직자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했다.

이들은 `헌법을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오기인사 반대' 등의 문구를 쓴 종이를 본회의장 출입문 앞에 붙여놓기도 했다.

한나라당 김형오(金炯旿) 원내대표는 임채정(林采正) 국회의장을 면담하고, 임명동의안의 직권상정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나경원(羅卿瑗) 대변인은 "전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하거나, 스스로 사퇴하기 전까지는 인사청문회와 국감 등 향후 국회일정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단히 배수진을 쳤다.

우리당 지도부는 오전부터 소속 의원들을 국회 주변에 대기시킨 가운데 임명동의안의 본회의 직권상정과 질서유지권 발동을 검토하는 등 표결처리를 위한 준비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민주당 김효석(金孝錫),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국민중심당 정진석(鄭鎭碩) 원내대표와 회동을 갖고 "직권상정도 국회법 절차 중의 하나"라며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원내관계자들은 "몸싸움까지 각오하겠다"며 `전의'를 보이기도 했지만 당내 일각에선 무리하게 임명동의안을 표결처리하는 것은 오히려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의원총회에서 김성곤(金星坤) 의원은 "단상 점거는 잘못이지만 우리가 몸싸움까지 하는 건 국민이 보기에 모양이 안좋다"며 "국민이 부동산이나 민생문제에 분노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여당은 좀 더 성숙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내부기류 탓인지 우리당은 본회의 소집 예정시간인 오후 2시를 3시간 이상 넘겨서도 별다른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노웅래(盧雄來)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브리핑을 통해 "전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는 즉시 본회의에서 적법절차에 따라 임명동의안 처리를 할 수 있도록 의장에게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국회 상황을 보면서 판단할 예정"이라며 공을 여당의 협상력에 넘긴 데 대해 우리당쪽은 청와대가 전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함으로써 행동개시를 위한 `고(go) 사인'을 줘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당 지도부는 임명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감안해 소속 의원들에게 해외출장 자제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문희상(文喜相) 의원 등 우리당 의원 20여명의 16일 일본 출장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나라당내 한일의원연맹 소속 의원들도 여당 의원들이 일본 출장을 포기할 경우 가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한일의원연맹의 방일 자체가 취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인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 의원은 "16일 오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면담하기로 돼 있는 데 일방적으로 방일을 취소할 경우 외교적 실례"라며 재고를 요청했다.

◇인준안 처리 전망 = 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서로의 입장만을 확인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여전히 `여야의 정치력 발휘'를 주문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여야 각당 역시 인준안 처리강행이 불러올 비판을 뒤집어쓰지는 않겠다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 등 의사일정의 파행에 부담을 느낀 한나라당내에서 여당이 `냉각기'를 갖고 이달 30일로 예정된 본회의까지 인준안 강행처리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면 점거농성을 풀 수 있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얻고 있어 이를 고리로 한 해법도출이 가능할 지 주목된다.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와 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는 이날 밤 여의도 인근에서 막후협상을 벌였지만 별다른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16일 오전 다시 원내대표회담을 갖고 조율에 나서기로 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회동직후 소속 의원들에게 "인사청문회에 대해서는 16일 오전 10시 전에 지침을 주겠다"며 "인사청문회는 정상화를 전제로 준비하고 한일의원연맹 방일할 분도 공항에 가도록 하라"고 말했다.

우리당 노웅래 원내공보부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16일 회담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타협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시사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