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뒤 기자회견장에 나온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유난히 지쳐보였다.

평소와 같은 패기 넘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자들과 회견을 하면서도 명쾌하게 답변하기보다는 고민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줬다.

집값을 잡기 위한 목적만으로 금리인상책을 동원할 수는 없지만,부동산 문제를 그냥 놔두자니 중앙은행 총재로서 책임을 방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에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부동산 함정에 빠진 한은

이 총재는 "부동산 가격이 금리를 결정하는 데 고려해야 할 요소 가운데 하나인 것은 틀림없지만 균형있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통화정책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전체의 흐름을 감안해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원론에 따라 이번에 콜금리를 동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회의에서 금통위원들 사이에 부동산 관련 발언들이 많았다"며 부동산이 이날 회의의 주요 논쟁거리였음을 털어놨다.

이 총재는 "아파트값이 지난 4~5년간 계속 올라 국민 생활에 부담을 주고 여러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의 아파트값 급등이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이런 현상(집값 상승)이 경제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균형에서 벗어나 미래 경제에 큰 부담이 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는지,아니면 우리 경제가 소화할 수 있는 정도로 움직이고 있는지가 관심사"라는 말만 했다.

부동산 가격이 미래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정도로 오른다면 금리를 인상하겠다는 얘기를 한 것인데,어느 정도로 집값이 올라야 금리정책을 동원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이 총재는 "집값이 계속 오르면 금리를 올릴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다음 달 콜금리 결정이 어떤 방향으로 될 것이라고 예시하는 발언은 할 수가 없다"며 피해갔다.

그는 "한은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어떤 정책을 펴야 할지를 최근 부동산시장의 움직임과 관련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집값 더 뛰면 금리 올릴 듯

이 총재는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크게 상승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고 통화 당국인 한은도 이런 상황 전개를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시장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시장이 다 알아서 결정한다"는 말도 했다.

시장에만 맡길 경우 잘못돼 간다고 할 때만 시장에 영향을 주는 쪽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정말로 잘못돼 간다고 판단될 경우 개입하겠다는 뜻인데,시장이 잘못돼 가는지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고민하고 있다"는 말로 대신했을 뿐이다.


○대출 총량규제에는 부정적

이 총재는 그러나 대출총량규제에 대해서는 "법에 허용된 수단이긴 하지만 통상적인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정책수단과는 거리가 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대출총량규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경기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경기 감속 추세가 다소 완화되는 모습"이라고 말해 향후 경기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