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포럼 개막에 앞서 개막식 연설자로 초청한 세계적인 석학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학 교수와 인터넷 대담을 가졌다.

후쿠야마 교수는 고전,비교문학,정치학을 섭렵한 당대의 지성답게 포럼이 추구하는 글로벌 인재 양성에서부터 북핵 문제와 동북아시아의 역사 갈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세계사적·거시적 차원의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 대담 = 이동우 편집국 부국장 ]

○이=당신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역사의 종착점이고 냉전의 종식으로 그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북아시아에서는 북한 핵문제와 과거 역사 해석 등을 둘러싸고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가치의 추구보다는 오히려 민족주의적인 정서가 짙어지고 있다.

○후쿠야마=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높아지고 있는 민족주의는 매우 위험하다. 동북아의 점증하는 민족주의는 앞으로 이 지역의 정치질서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미국은 이 지역의 정치적인 갈등을 미리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광범위한 다자 간 자유무역주의를 촉진하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가장 위험한 것은 일본과 중국의 분열이다. 이 두 나라가 관계를 개선하는 것,그리고 다른 국가들이 어느 편으로든 갈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동북아 차원의 대학 교류나 사회적 인적자원 개발 프로그램 같은 것은 대단히 바람직할 것이다.

○이=냉전 종식 이후 세계화가 가속화했다. 세계화는 자유주의의 확산이기도 하다. 당신은 그런 관점에서 '역사의 종언'이라는 책을 썼다. 하지만 9·11 테러와 이라크전쟁,이란과 북한의 핵무장 추진,중남미의 자원 민족주의 및 좌파 득세 등으로 세계화가 곳곳에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세계화의 장래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후쿠야마=9·11 테러가 세계화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인상적인 사실이다. 경제 민족주의,전쟁이나 테러처럼 세계화 흐름에 역행하는 일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글로벌 경제의 힘이 이런 사건들의 충격을 예상보다 훨씬 더 잘 흡수하고 있다. 세계화는 다른 민족,다른 문화와 소통하려는 인간 본성의 발현이기 때문에 여러 어려움 속에도 진전할 것이다.

○이=당신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통치력이 취약한 정부가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 같은 테러 집단의 온상이 되고 세계평화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에 미국처럼 '강한 나라'가 세계평화의 위협 요소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약한 나라'에 개입해 민주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강력히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전 경험 등에 비춰볼 때 북한을 엄하게 다루는 것이 효과적일까? 불량 국가를 봉쇄 내지는 압박하는 것은 내부 결속을 다지게 만들어 결국 그들의 연명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후쿠야마=국제적 제재는 핵 확산을 막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고,핵 확산이 이뤄진 지금 핵기술 이전을 막기 위해 고안됐다.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는 그런 면에서 타당하다. 하지만 미국이 이라크에 시도한 강제적인 정권 변화는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는 수단으로서는 적절치 않다. 이는 오늘의 이라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고 나 역시 이 같은 정책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북한에 대해 강제적인 정권 변화 방식을 쓸 것인지는 고려된 적이 없다.

○이=당신이 주장한 '신뢰가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핵심 사회자본'이라는 논리를 국제관계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오늘날 이란과 북한 핵을 둘러싼 긴장은 근본적으로 서방세계와 이들 나라 간의 신뢰 문제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 한국 내에서 반미 감정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국가 간의 '신뢰 부족'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국가 간 신뢰의 모범 사례로는 유럽의 통합,즉 유럽연합(EU)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경험을 다른 지역,다른 국가 간에 당장 적용하기 힘든 까닭은 무엇인가?

○후쿠야마=신뢰를 위한 기본 조건 자체가 없을 경우 신뢰가 항상 답이 되지는 않는다. 어떤 이유로든 핵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이란이나 북한을 신뢰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따라서 이들과의 신뢰를 억지로 촉진하려는 데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한·미 FTA의 경우 신뢰가 아니라 특수한 경제적 이해관계의 문제다. 신뢰가 아무리 높더라도 FTA로 인해 심각하게 피해를 받는 산업 분야의 반대를 극복하기는 간단치 않다. EU가 이런 특수한 이해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2차대전과 냉전이라는 그들 특유의 경험 때문이다.

정리=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 후쿠야마 교수는

1952년 미국 시카고에서 일본계 이민 3세로 태어났다.

코넬대학교에서 서양고전을 전공하고,예일대학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하고,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1996년까지 랜드연구소에서 선임연구위원을 지내면서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실 차장을 역임했다.

2005년부터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정치학자이자 역사철학자인 후쿠야마 교수는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붕괴하기 시작한 1989년 논문〈역사의 종언〉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이 논문을 바탕으로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을 출간했다.

이 책은 공산권이 몰락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함으로써 헤겔과 마르크스적 의미의 역사는 끝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간과 동시에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후쿠야마 교수는 인간의 역사가 진보를 향해 일관된 방향을 갖는다는 이른바 '헤겔의 보편사관' 입장을 취하는 점에서 마르크스와 함께 '헤겔 계보'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를 역사의 종착지로 본 마르크스와 달리 자유민주주의를 역사의 완결로 보고 있다.

후쿠야마 교수는 "자연인으로서의 욕망,경제인으로서의 이성,명예와 자존심이 인간 본성의 요체이며 이런 본성으로 인해 인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1995년에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쟁 시스템과 함께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내용의 저서 《트러스트:Trust》를 출간했다.

미국 대통령 직속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최근 인간 복제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한 《휴먼퓨처(Our Posthuman Future);부자의 유전자,가난한 자의 유전자》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