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인수합병이 이뤄지면 기존 경영진은 물갈이 된다.

새로운 경영진이 임명되고,이들은 대부분 그동안 쌓아놓은 자산을 팔아치우거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여 주가를 띄우고 높은 가격에 되팔아 차익을 챙긴다.

그런데 포이즌 필(독약처방)이라는 것이 유행하면서 적대적 인수합병은 힘들어졌다.

적대적 인수합병이 시도되면 즉시 기존 주주에게 대규모의 주식을 아주 싼값에 발행하여 넘겨주도록 장치가 되어 있으니 누가 그 기업을 공격하겠는가.

독약처방이 일반화 된 이후 미국의 적대적 인수합병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 대신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주주행동주의다.

이들은 영향력 있는 지분을 획득하되 기존 경영진을 모두 바꾸기보다는 한두 명의 이사 선임을 요구할 뿐이다.

이 점이 적대적 인수합병과는 다르다.

그러나 가만히 있지 않고 압력을 가한다.

요구사항은 주로 자산매각,사업부문 매각,각종 구조조정 등이다.

취득지분은 적대적 인수합병의 경우보다 작아서 비용은 훨씬 적게 든다.

그러나 이들이 본격적으로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면 기존 경영진이 견디기 힘들다.

경영에 대해 점수를 매겨서 100점이 나오는 경영진이 어디 있겠는가.

대부분 어딘가에 부족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새삼 갑자기 새로운 주주가 와서 너는 왜 100점이 아니냐고 문제를 삼으면 버티기 힘들다.

결국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칼아이칸 연합군이 대표적인 예다.

주주행동주의자의 대표격인 칼아이칸의 전략은 'R&B(raid and break-up ;공격 후 분할매각)'전략이라고 불린다.

그는 과거에 독자적으로 움직였는데 최근 다른 투자자들과 연합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그래서 칼 아이칸 연합군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는 항공사인 TWA에 대한 적대적 M&A를 비롯해 식품회사인 나비스코, 철강업체 USX 등을 차례로 공략하면서 기업사냥꾼으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공략대상기업을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고 해서 상어라고도 불린다.

그는 우리나라의 KT&G에 대해서도 비슷한 전략을 썼다.

자회사 주식을 상장하여 나누어달라든가 보유 부동산을 부동산신탁으로 바꾸어 회사 지분대로 달라든가 하는 식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정도의 무리한 요구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는 소액주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주주행동주의의 수호자로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인수기업을 자기 마음대로 경영한다는 이유로 두 회사의 소액주주들로부터 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샌즈카지노 호텔 소액주주들이 그 예다.

아이칸은 자신의 지주회사격인 미국부동산 파트너스에 호텔 자산을 넘겨버렸고 이 바람에 소액주주들은 피해를 보았다.

이들은 왜 미리 주식처분 기회를 주지 않았느냐며 지난해 9월 그를 고소했다.

이 밖에 통신회사인 XO커뮤니케이션즈 소액주주들도 아이칸을 고소한 상태다.

소액주주를 위한다는 것이 허울 좋은 명분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게 하는 대목이다.

이들은 제국적 주주(imperial shareholder)라고까지 비판받는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장기적으로 기업이 잘되고 영속적인 성장을 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주가가 오르면 미련 없이 팔고 떠난다.

사실 회사 자산 중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도 충분히 있고 보유하고 있어도 무리 없는 것이 많다.

오히려 이를 당장 팔아치우도록 유도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노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자산이 엄청나게 축적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자산 중 상당 부분이 펀드화하면서 전략도 바뀌고 있다.

펀드가 많아지다 보니 기존의 전략으로 수익을 내기가 힘들어진다.

그러자 단기적인 투자를 하던 많은 헤지펀드들마저 주주행동주의 전략을 채택하면서 "헤지펀드 행동주의"가 일반화되고 있다.

이들은 이제 국제적으로 그 무대를 넓히고 있다.

소위 장하성 펀드도 이런 부류의 펀드다.

칼 아이칸 연합군과 장하성 펀드가 등장하고 타이거 펀드가 돌아왔다.

제비들이 날아오기 시작하면 봄이 오듯 이제 한국도 헤지펀드 행동주의의 무대가 되려 하고 있다.

이제 이들에 대한 여러 가지 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경영진 스스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지분도 잘 챙겨놓고 혹시 별로 신경을 쓰지 못해 방치된 부동산이나 주식이 있다면 이에 대한 효율적인 사용 혹은 처분계획도 세우고,필요한 구조조정을 해놓고 주가관리도 해놓는 등 대비를 해야 한다.

또한 이들의 공격에 대비해 법률자문사를 지정하는 등 법적인 준비를 할 필요도 있다.

법률자문사들은 유사 시 공격자와의 협상담당자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금융의 정글에 신종 맹수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언제 어느 때 떼거리로 몰려와 공격을 할지 모르는 맹수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와중에 우리 정부는 순환출자금지 운운하며 기업의 방어와 대비를 어렵게 만드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눈을 좀 밖으로 돌리면 나으련만 거꾸로 가도 한참 거꾸로 가고 있다.

/서울시립대 교수 chyun@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