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초일류 기업의 '오너십 리포트'] (8) 도요타 .. 글로벌 '도요타 신화' 일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쇼이치로 명예회장(81)은 지난 6월 총리 특사로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국을 순회했다.
지난해 상반기 일본에서 35년 만에 열린 아이치 세계박람회(EXPO)에 참가한 국가들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쇼이치로 명예회장은 일본 부활을 알리는 마당이었던 아이치 박람회 준비위원장을 맡아 물심 양면으로 뛰었다.
일본 사회에서 도요타자동차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도요타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도요타를 탄생시킨 도요다 일가에 대한 존경심도 크다.
이들 오너 일가는 2%가 안 되는 지분을 갖고 실질적으로 도요타자동차를 움직이면서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도쿄(일본)=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
도요타자동차는 1937년 설립됐다.
내년에 창립 70주년을 맞는 도요타는 올해 생산 대수에서 GM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메이커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
수익성에서는 GM이나 포드자동차를 앞선 지 오래다.
도요타는 매년 사상 최고 이익을 경신 중이다.
2006 회계연도(2006년 4월~2007년 3월)에는 일본 기업 중 처음으로 영업이익 2조엔 돌파라는 대기록을 달성할 게 확실해 보인다.
2001년에 1조엔을 돌파한 데 이어 불과 5년 만에 이익이 2배로 늘어나는 경이적인 기록이다.
올해 매출액은 23조엔,세후 이익은 1조4000억엔에 달하고 생산 대수는 85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도요타자동차의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일본 국내 업계는 물론 세계 각국 기업들은 도요타의 경영 노하우 벤치마킹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도요타가 양과 질에서 세계 정상의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한 것은 창업자의 DNA가 면면히 이어져 기업 문화로 뿌리내렸기 때문이라는 게 도요타 연구자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히노 사토시 히로시마대학 교수는 "급변하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도요타가 지속적인 성장을 해온 비결은 오너 가문이 중심이 돼 흔들리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요즘도 도요타자동차의 신입사원들은 창업주인 도요다 사키치의 생가(시즈오카현 소재)를 방문한다.
사원들은 창업주 생가를 찾아 도요타의 창업 정신을 되새긴다.
1867년에 태어난 사키치는 도요타그룹 모기업인 도요타자동직기를 설립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했지만 매일 밤 독학으로 설계를 배워 품질과 생산 효율에서 세계 최고의 자동직기를 만들었다.
사키치의 정열과 연구정신,현장주의는 도요타 기업 문화의 바탕이다.
사키치가 방직기 사업으로 벌어들인 자금은 장남 기이치로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는 기반이 됐다.
사키치는 "제조로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라" "노동은 인간의 의무다"라는 유지를 남겼다.
창업 2세인 기이치로는 1894년 시즈오카현에서 태어났다.
1920년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부친 회사인 도요타자동직기에 입사했다.
1921년 미국과 유럽의 산업시찰을 통해 앞으로는 자동차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통감하고 사내에 자동차부를 설치해 자동차 개발 업무를 맡았다.
그는 자동차의 품질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협력업체의 모든 품질까지도 일원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필요하게 구매처를 늘리거나,구입가격에 눈이 멀어 구매처를 쉽게 변경하지 못하도록 했으며,항상 일정하고 안정된 거래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전문화를 꾀하기 위해 협력업체에 대한 육성과 지도를 강조해 나갔다.
바로 이 같은 방침이 오늘날 도요타 협력업체의 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이치로는 1941년 사장에 취임해 도요타자동차의 초석을 쌓은 뒤 1950년 전후 디플레이션 때 발생한 노사분규와 자금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다.
도요타는 당시 노사 분규의 경험을 활용해 그 뒤 단 한 차례도 노사 분쟁을 겪지 않았다.
도요타는 1967년 창립 30년을 맞아 펴낸 사사에서 △대중 승용차 중심 △대량 생산 방식 △미래 지향과 연구개발 중시 △기초 공업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기이치로의 도요타 비전을 제시하고 경영진들이 따르도록 했다.
기이치로가 자동차 산업의 초석을 놓았다면 장남인 도요다 쇼이치로 현 명예회장은 회사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창업 3세인 쇼이치로는 1952년 도요타자동차에 입사한 뒤 1960년대에 TQC(전사적 품질관리)를 도입해 도요타의 품질 신화를 일궈냈다.
쇼이치로 사장의 또 하나 뛰어난 점은 전문경영인인 오쿠다 히로시 전 게이단렌 회장과 조 후지오 현 회장을 키워낸 것이다.
이들 2명의 뛰어난 전문경영인 덕분에 도요타는 21세기 진입과 함께 글로벌 톱 메이커로 우뚝 섰다.
이제 도요타의 미래는 창업 4세로 경영 대권을 준비 중인 아키오 부사장(50) 몫으로 돌아갔다.
히노 사토시 히로시마대학 교수는 "오너 가문과 전문경영인이 힘을 합쳐 끊임없이 개선해가는 도요타의 경영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에 세대 교체를 해도 경쟁력이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상반기 일본에서 35년 만에 열린 아이치 세계박람회(EXPO)에 참가한 국가들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쇼이치로 명예회장은 일본 부활을 알리는 마당이었던 아이치 박람회 준비위원장을 맡아 물심 양면으로 뛰었다.
일본 사회에서 도요타자동차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도요타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도요타를 탄생시킨 도요다 일가에 대한 존경심도 크다.
이들 오너 일가는 2%가 안 되는 지분을 갖고 실질적으로 도요타자동차를 움직이면서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도쿄(일본)=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
도요타자동차는 1937년 설립됐다.
내년에 창립 70주년을 맞는 도요타는 올해 생산 대수에서 GM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메이커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
수익성에서는 GM이나 포드자동차를 앞선 지 오래다.
도요타는 매년 사상 최고 이익을 경신 중이다.
2006 회계연도(2006년 4월~2007년 3월)에는 일본 기업 중 처음으로 영업이익 2조엔 돌파라는 대기록을 달성할 게 확실해 보인다.
2001년에 1조엔을 돌파한 데 이어 불과 5년 만에 이익이 2배로 늘어나는 경이적인 기록이다.
올해 매출액은 23조엔,세후 이익은 1조4000억엔에 달하고 생산 대수는 85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도요타자동차의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일본 국내 업계는 물론 세계 각국 기업들은 도요타의 경영 노하우 벤치마킹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도요타가 양과 질에서 세계 정상의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한 것은 창업자의 DNA가 면면히 이어져 기업 문화로 뿌리내렸기 때문이라는 게 도요타 연구자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히노 사토시 히로시마대학 교수는 "급변하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도요타가 지속적인 성장을 해온 비결은 오너 가문이 중심이 돼 흔들리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요즘도 도요타자동차의 신입사원들은 창업주인 도요다 사키치의 생가(시즈오카현 소재)를 방문한다.
사원들은 창업주 생가를 찾아 도요타의 창업 정신을 되새긴다.
1867년에 태어난 사키치는 도요타그룹 모기업인 도요타자동직기를 설립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했지만 매일 밤 독학으로 설계를 배워 품질과 생산 효율에서 세계 최고의 자동직기를 만들었다.
사키치의 정열과 연구정신,현장주의는 도요타 기업 문화의 바탕이다.
사키치가 방직기 사업으로 벌어들인 자금은 장남 기이치로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는 기반이 됐다.
사키치는 "제조로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라" "노동은 인간의 의무다"라는 유지를 남겼다.
창업 2세인 기이치로는 1894년 시즈오카현에서 태어났다.
1920년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부친 회사인 도요타자동직기에 입사했다.
1921년 미국과 유럽의 산업시찰을 통해 앞으로는 자동차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통감하고 사내에 자동차부를 설치해 자동차 개발 업무를 맡았다.
그는 자동차의 품질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협력업체의 모든 품질까지도 일원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필요하게 구매처를 늘리거나,구입가격에 눈이 멀어 구매처를 쉽게 변경하지 못하도록 했으며,항상 일정하고 안정된 거래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전문화를 꾀하기 위해 협력업체에 대한 육성과 지도를 강조해 나갔다.
바로 이 같은 방침이 오늘날 도요타 협력업체의 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이치로는 1941년 사장에 취임해 도요타자동차의 초석을 쌓은 뒤 1950년 전후 디플레이션 때 발생한 노사분규와 자금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다.
도요타는 당시 노사 분규의 경험을 활용해 그 뒤 단 한 차례도 노사 분쟁을 겪지 않았다.
도요타는 1967년 창립 30년을 맞아 펴낸 사사에서 △대중 승용차 중심 △대량 생산 방식 △미래 지향과 연구개발 중시 △기초 공업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기이치로의 도요타 비전을 제시하고 경영진들이 따르도록 했다.
기이치로가 자동차 산업의 초석을 놓았다면 장남인 도요다 쇼이치로 현 명예회장은 회사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창업 3세인 쇼이치로는 1952년 도요타자동차에 입사한 뒤 1960년대에 TQC(전사적 품질관리)를 도입해 도요타의 품질 신화를 일궈냈다.
쇼이치로 사장의 또 하나 뛰어난 점은 전문경영인인 오쿠다 히로시 전 게이단렌 회장과 조 후지오 현 회장을 키워낸 것이다.
이들 2명의 뛰어난 전문경영인 덕분에 도요타는 21세기 진입과 함께 글로벌 톱 메이커로 우뚝 섰다.
이제 도요타의 미래는 창업 4세로 경영 대권을 준비 중인 아키오 부사장(50) 몫으로 돌아갔다.
히노 사토시 히로시마대학 교수는 "오너 가문과 전문경영인이 힘을 합쳐 끊임없이 개선해가는 도요타의 경영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에 세대 교체를 해도 경쟁력이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