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보험상품 심사권한을 보험개발원으로 넘기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보험업계는 이 같은 방안이 현실화된다면 사실상 감독기관이 2개로 늘어나 "상전 위에 또 다른 상전을 두게 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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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재정경제부는 최근 보험사들이 상품 개발시 금감원에 신고 또는 제출하는 기초서류(사업방법서·약관·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 가운데 상품심사의 핵심기능인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 대한 심사권을 보험개발원에 넘기는 방안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지금은 보험사들이 보험개발원이나 자체 선임계리사로부터 보험료율을 확인받아 금감원에 신고 또는 제출해 최종 심사를 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보험개발원 심사만 거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금감원은 상품 기초서류 가운데 사업방법서와 약관만 심사하고,보험개발원은 핵심기능인 보험료율 및 책임준비금을 심사하는 등 상품심사 기관이 2곳으로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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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상품심사를 할 때 약관과 보험료율 심사를 따로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결국 보험개발원과 금감원으로부터 모두 심사를 받아야 해 규제가 오히려 강화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보험업계에는 "보험개발원이 감독기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보험개발원이 재경부 용역을 받아 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자신의 조직강화를 위해 여러 가지 권한을 갖고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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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보험사로부터 분담금(회비)을 받아 업계 이익을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이 감독기구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에는 보험개발원이 상품심사 권한뿐만 아니라 보험가입자 정보수집 및 활용 권한도 갖도록 하고 있다.

손보사 한 임원은 "보험개발원이 상품심사 권한에다 계약자 정보수집 활용 권한까지 가질 경우 제2의 보험감독국이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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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규제가 많은 보험산업에 '시어머니'가 하나 더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보험상품 심사권한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 금감원도 반발하기는 마찬가지다.

금감원 관계자는 "업계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설립한 보험개발원이 계약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필요한 상품심사 권한을 갖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상품심사 권한이 사라질 경우 금감원은 잘못된 요율산출에 대해서는 즉시 변경권고를 내릴 수 없게 된다"며 "보험 신상품이 쏟아지고 가입자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 보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재경부와 금감위는 보험산업에 대한 금감원의 규제가 너무 과도하다고 판단해 보험개발원으로 일부 권한을 이양하려는 것"이라며 "보험개발원의 역할을 놓고 재경부·금감위측과 금감원·보험사측이 충돌을 빚고 있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보험개발원이 업계 위에 군림하는 감독기구로 변신할 조짐을 보이자 별도의 보험연구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