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산유량 감산 조치는 국제유가를 배럴당 60달러 선에서 묶어두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가 20일 보도했다.

지난 여름 배럴당 78달러 대에 도달한 후 몇 달 새 25% 가량 하락하면서 60달러를 밑돌고 있는 국제유가를 현 상태로 놔둘 경우 추가 하락 가능성이 있어 이를 차단하기 위해 감산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신문은 4년전 배럴당 30달러 선에서 만족했던 OPEC이 이보다 2배 뛴 60달러 선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11개 회원국의 씀씀이가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배럴당 15달러에 그럭저럭 견뎠지만 이후 지출이 매년 20%씩 늘어 현재는 배럴당 최소 38달러 선은 돼야 국가 유지가 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또 무분별한 사회정책 비용과 낭비성 왕족 유지비용을 조달하려면 2010년에는 배럴당 65달러 선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런 점이 반영돼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19일 OPEC 긴급 각료회담을 앞두고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하락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사정은 다르지만 베네수엘라의 고유가 의지도 분명하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와 적대 전선을 확고하게 하면서 남미의 패권을 노리고 있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중인 베네수엘라도 점차 석유 예산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 프로그램을 강행하고 있는 이란은 자국의 석유생산 잠재력을 무기화할 의지마저 비치고 있다.

또 감산 조치에 참여한 리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나이지리아, 알제리, 인도네시아, 카타르 등도 고유가 유지가 싫을 리 만무하다.

결국 이런 입장이 반영돼 OPEC는 이날 새벽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긴급 각료회담을 열어 다음 달 1일부터 실제산유량을 120만 배럴을 줄여 2천630만 배럴로 유지키로 결정했다.

이는 당초 알려졌던 감산 폭보다 20만배럴이 더 많은 것이다.

이에 따라 OPEC 회원국들은 해당국에서 영업중인 유럽과 미국의 석유 메이저인 로열 더치 셸, BP, 토털, 엑손 모빌, 셰브론 텍사코 등에 감산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향후 감산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감산 소식이 석유 메이저에 나쁘지 만은 않을 것이라고 FT는 분석했다.

그러나 현재 석유시장은 미국의 성장 둔화로 세계 석유저장 탱크의 97%가 채워진 상태이고 에너지 절약으로 석유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메이저 석유업체의 경우 생산된 석유를 처리하지 못해 유조선에 석유를 저장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특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의 올해 석유 수요 둔화를 우려하고 있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최근 보고서에서 2006년의 OECD 석유 수요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문은 OPEC 관리의 말을 인용해 이런 수요 감소와 함께 새로운 유전 개발 등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더 하락하는 것을 막고 OPEC의 새로운 저지선인 배럴당 60달러 선을 유지하기 위해 내년 1월 이전에 하루 200만 배럴의 추가 감산이 이뤄질 수도 있는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연합뉴스) kji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