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한국을 동북아 연구개발(R&D) 허브로 만들겠다며 대대적인 유치에 나선 외국 기업들의 국내 R&D센터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유치의 주 목적인 박사급의 우수한 외국인 연구 인력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데다 국내 기업과 공동연구 등을 통한 기술이전 효과도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 없는 R&D센터 =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 연구소는 지난해 말 기준 167개(지분 100%)다. 지분이 50% 이상인 외국 기업 연구소는 500여개를 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연구소는 한국을 단순히 제품 생산을 위한 연구기지로만 여기고 있을 뿐 첨단연구나 기술 이전 등을 거의 고려치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산업기술평가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 R&D센터를 두고 있는 외국기업 중 70.4%는 한국을 단순히 생산활동에 이용하기 위한 기지로만 여기고 있다고 대답했다. 게다가 외국 기업 R&D센터의 외국인 연구원 비중은 0.5%(총 연구원 6939명 중 36명)에 불과해 외국 R&D센터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라는 지적이다. 그나마 박사급 연구원은 6명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 기업 R&D센터 유치의 원래 목적인 선진 기술을 받아들이는 효과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조사(2004년 기준)에 따르면 외국 기업 R&D 센터 중 86.1%가 국내 기업이나 연구소와 공동 연구 실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름만 R&D센터일 뿐 실제로는 고객지원센터 역할밖에 못하는 곳도 수두룩하며 국내 대기업의 기술 정보를 빼내기 위해 만든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의 기업연구소 관계자는 "R&D센터가 오히려 판매나 영업분야 기능을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며 "심지어 어떤 연구소는 외국의 고가 기술장비를 팔아먹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건수 늘리기 부작용 = 해외 R&D센터 유치사업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의 '동북아 R&D 허브 정책'에 따라 시작됐다. 이 때문에 해외 R&D센터 유치 사업에 전 부처가 나서고 있고,지원도 거의 전폭적이다. 올해부터 국내에 100만달러 이상을 투자해 R&D센터를 세우는 외국 기업에 우리 정부가 현금지원까지 해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외국 기업들이 요구하는 외국인 단지 구축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나 아일랜드가 추진하는 외국의 우수 인력에 국내 연구비를 과감하게 지원하는 제도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질적 유치 전략으로 전환해야 = 무엇보다 그동안 양적 유치에 급급해온 데에서 벗어나 질적 유치 및 활용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정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R&D를 확대하고자 하는 기업과 물건 팔기에만 집중하는 기업에 차별을 두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핵심 연구소 유치가 급선무라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국적 기업들과 우수 연구인력이 관심을 가질 만한 과감한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양지훈 한독기술협력센터 소장은 "외국인 교육단지 설립이나 교통 환경의 개선 등 외국인 투자 유치의 기본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