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문제가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에드 피터 도이치자산운용 아시아본부 대표는 최근 아시아 본사를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옮긴 뒤 이렇게 말했다.

자신과 직원들의 자녀들이 홍콩의 스모그에 더 이상 노출되는 것을 막고 싶었다는 것이다.

도이치자산운용만이 아니다.

스타크 인베스트먼트,콩코디아 어드바이저 등 미국 헤지펀드 등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홍콩을 줄지어 탈출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의 홍콩 탈출의 1차적 원인은 대기오염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기오염은 떠나고 싶은 사람의 엉덩이를 걷어찬 격일 뿐,근본적인 원인은 홍콩 자체가 비즈니스 허브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홍콩 무역발전국을 찾기 위해 택시를 잡아탄 기자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컨벤션플라자'라는 행선지를 여러 차례 말했지만 눈만 껌뻑이던 운전기사는 호텔 벨보이가 행선지를 한자로 적어주자 그제서야 시동을 걸었다.

무역발전국 제니 쿠 해외프로모션실장은 "홍콩이 1997년 중국에 편입된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며 "중국인들이 몰려들면서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영어 수준이 떨어진 것도 그렇지만 영국식 사고 방식이 중국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홍콩의 고민거리다.

쿠 실장은 '만만디'로 대표되는 중국식 사고 방식이 침투하면서 홍콩은 중국의 '그렇고 그런 도시'가 돼가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홍콩의 정·재계 지도자들은 요즘 "이대로 가다가는 '아시아의 금융허브'는 커녕 '중국의 주변부'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라파엘 후이 정무사장(총리)이 "공공지출 억제와 '작은 정부' 만들기에 실패하면 홍콩이 중국 본토의 변방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문제 제기를 한 직후 리자청 허치슨왐포아그룹 회장은 "홍콩 시민들이 합심해 극복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거들고 나섰다.

리타판 입법의장(국회의장)도 "중국 대도시의 항만 및 공항 건설로 홍콩의 젖줄인 물류산업의 경쟁력이 고갈되고 있다"고 심각성을 강조했다.

'홍콩 주변부화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타격과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의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졌던 홍콩 경제는 2003년 중국과 자유무역협정(CEPA)을 체결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유통 금융 등 서비스산업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홍콩 경제의 특성상 본토 도움 없이는 살아날 수 없겠다는 판단을 한 중국 정부가 홍콩에 '선물'을 준 셈"이라는 게 엄기성 홍콩 부총영사의 설명이다.

엄 부총영사는 "CEPA 체결을 통한 경제 회복은 중국으로의 귀속을 가속화시킬 뿐 홍콩 경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재정 적자에 허덕여온 홍콩 정부는 요즘 소비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비즈니스의 침체로 세수가 턱없이 부족해진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론도 나오고 있다.

전 세계 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모델이라는 홍콩의 이런 움직임은 현지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 기업들에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홍콩 모델'을 극찬해온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튼 프리드먼이 "홍콩이 실망스럽다"고 말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서 날아오는 오염 물질에 의한 대기오염은 기업들을 해외로 내모는 계기가 되고 있다.

대기오염으로 1년에 1600명 정도가 사망한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한 설문 조사에서는 홍콩에 주재하는 다국적 기업 경영자의 78%가 '공해 때문에 홍콩을 떠났거나 앞으로 떠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홍콩 생산력촉진국의 웨이먼 추 생산기술부문 부총재는 "홍콩은 매우 작은 나라여서 비즈니스 환경을 비즈니스에 적합하게 해놓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며 "텅빈 홍콩의 모습을 걱정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홍콩=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