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한국제지가 연 17만t 규모의 설비를 증설하면서 촉발된 국내 복사용지 시장의 공급 과잉 현상을 제지업계 스스로 해소할 수 있을지 여부가 시험대에 올랐다. 제지업계는 최근 국내 복사용지 생산 1위 업체인 한국제지와 수입판매업체인 무림페이퍼 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을 추진해 이를 타개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두 업체가 브랜드 부착 문제를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어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 업체 간 생산 위탁으로 공급 과잉 해소 추진

1일 업계에 따르면 한솔제지 무림페이퍼 한국제지 신호제지 등은 국내 종이시장의 전반적인 공급 초과 타개책으로 우리나라 업체 간 생산을 위탁하는 방안을 활성화하자고 대체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지업계는 공급 과잉이 가장 극심한 복사용지 분야에서 우선 적용키로 하고 무림페이퍼가 매년 외국에서 수입해 국내 시장에서 판매하는 복사지 연간 3000t 중 1000t가량을 한국제지 제품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추진키로 했다.

제지업계는 이 방안이 국내 업체 간 상생 협력의 새로운 모델인 데다 성사되면 공급량이 상당히 줄게 돼 하락 추세인 종이값의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브랜드 붙이는 문제로 협상 진척 안돼

그러나 양사는 복사용지에 브랜드를 붙이는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으면서 협상에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제지는 무림페이퍼에 제품을 공급해 주는 대신 복사지 하드케이스(복사지 10개들이 박스)에다 '이 종이는 한국제지에서 만들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제지측은 "화장품 등의 경우 OEM이라도 제조사를 명기하는 게 통례"라며 이를 반드시 넣어 줄 것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무림페이퍼측은 "그동안 수입한 제품에 붙여왔던 우리 회사의 고유 브랜드 미스터카피를 훼손하는 다른 방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 경우 공급의 안정성을 보장해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한국제지측이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무림측은 밝혔다.

제지업계 한 관계자는 "제지 유통업자들이 현재 국산 복사지를 써주는 것을 조건으로 인쇄용지 등 다른 종이에 대한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등 공급 과잉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 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인도네시아 태국 등 외국 업체들이 물밀듯이 국내로 진출해 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끼리 이 정도의 협력도 끌어내지 못한다면 외국업체들의 시장 잠식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