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명수는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던 1897년 당시 궁중에서 사용되던 생약비방에 양약의 장점을 취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입니다.
당시 선전관을 지낸 동화약품 창업주 아버지 민병호 선생이 일반 백성을 위해 편하게 복용할 수 있도록 혼합처방함으로써 탄생했습니다.
급체, 소화불량에 특별한 약이 없었던 당시에 나온 활명수는 복용이 간편하고 약효도 뛰어나 '생명을 살리는 물(活命水)'로서 민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1897년 민병호 선생의 아들 민강씨가 현재 동화약품의 모체가 된 동화약방을 세움으로써 활명수는 대량생산체제를 통해 대중화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1가지 순수생약성분으로 제조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1966년 탄산가스를 첨가해 청량감을 보강한 '까스활명수', 1989년 '까스활명수-큐' 등 배합에는 일부 변화가 있어 왔습니다.
가격 면에서도 1910년대 60ml 활명수 1병 값이 50전으로 설렁탕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말을 먹을 수 있는 비싼 수준이었지만 현재 가격은 500원으로 엄청나게 저렴해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걸어온 활명수는 이제 전자동 액제생산라인에서 연간 1억병이 생산되고 있으며 연매출 350억원, 지난해 기준 시장점유율 60%를 점하는 빅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그동안 팔린 활명수는 무려 78억병으로 일렬로 세우면 지구를 23바퀴 반이나 돌고도 남을 양"이라며 "소화제 시장이 위축된 2000년 이후에도 해마다 평균 20% 가까운 매출 신장세로 동화약품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조성진기자 sccho@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