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홍택 < KDI경제정보센터 소장 >

한·미 FTA 3차 협상이 열리던 미국 시애틀에서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파견한 원정시위대가 가두행진과 촛불집회를 가졌다고 한다.

한·미 FTA에 대해 치밀한 협상을 통해 최대한의 실리를 확보하는 한편 피해부문에 대한 적절한 보상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적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미 FTA 자체를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한·미 FTA는 무역자유화 또는 개방화의 일환이다.

개방화를 이룬 나라의 1인당 소득은 개방하지 않은 나라의 1인당 소득보다 훨씬 빨리 증가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이미 확인된 기본적인 경제원리다.

현재의 선진국들은 20세기 이전부터 일찍이 교역 증대에 나선 나라들이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국가들은 1960년대에,최근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은 1980년대에 개방정책을 채택했다.

자급자족 노선을 고집하던 인도와 구공산권 국가들마저 이제는 세계화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외개방정책을 택함으로써 경제 성장과 소득 분배의 형평을 동시에 달성한 국제적인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특히 1960∼95년 중 어느 시기의 10년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불과 10년간 한국의 1인당 소득증가율은 19세기 100년간 영국의 1인 당 소득증가율을 상회한다.

개방화에 따른 국제무역의 증대는 거래 당사자에게 모두 이익을 가져다 준다.

이는 거래 당사자가 각각 가장 잘 할 수 있는 생산 활동에 전문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 상대방보다 상대적으로 싼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부문에 전문화하게 되면 각자의 생산량이 늘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생산량,즉 소득도 늘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이 같은 원리를 '비교우위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보다 모든 상품을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는 품목에 특화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빌 게이츠가 노래실력이 상당히 뛰어나 가수로도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빌 게이츠가 가수 활동과 기업 경영을 병행하는 것과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에 전문화하는 것 중 어느 편이 국민 소득 증대에 유리할까? 대답은 분명하다.

대외개방성이 기술 발전과 국가 경제의 번영을 촉진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중세까지만 해도 세계의 기술적 선도자였으며 서양에 비해 높은 생활 수준을 누렸다.

그러나 16세기부터 서양이 선도적 지위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19세기 말에 와서 중국은 서구열강의 준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국이 쇠퇴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중국이 15세기부터 폐쇄적인 정책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경제사가들은 1434년을 중국 쇠퇴의 결정적인 시기로 꼽고 있다.

그해에 명나라 황제는 인도양의 항구들을 거쳐 동아프리카 해안까지 탐험했던 세계에서 가장 크고 선진적인 정화제독의 선단을 해체하고 조선소를 폐쇄했다.

외향적으로 분출하던 국가에너지를 내부에 가둬버리는 커다란 우를 범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수세기 동안 중국의 해양 무역과 기술 발전은 크게 위축됐다.

한·미 FTA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500여년 전 중국이 범한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의 기적'을 이끌었던 도전정신의 핵심인 개방성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