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된 지 6년밖에 안 된 PC 부품 업체가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국내 3위 PC 메이커 삼보컴퓨터 인수에 나서 화제다.

주로 하드디드크드라이브(HDD)용 헤드(HSA)를 만들어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에이치앤티(H&T)가 주인공.본사가 청주에 있는 지방 중소기업이다.

매출만 놓고 보면 에이치앤티는 삼보컴퓨터의 자회사 정도에 불과하다.

이 회사는 지난해 141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7572억원을 기록한 삼보의 20%도 안 된다.

더구나 삼보는 한때 4조원대 매출을 올리며 삼성과 당당히 겨뤘던 회사다.

에이치앤티는 최근 법원에 삼보컴퓨터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이 회사 정국교 사장(46)은 삼보를 인수하려고 나선 이유가 뭐냐고 묻자 "삼보는 브랜드 가치가 있는 회사라서 국내외 유통망을 재정비하고 마케팅 전략을 가다듬으면 중견 PC업체로서 분명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대답했다.

삼보컴퓨터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업체는 에이치앤티 외에도 중국 PC업체 레노버의 한국법인인 한국레노버,일본 노트북 유통업체인 MCH와 MBK파트너스 등 펀드 한두 곳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과 매각 주간사인 삼정KPMG는 계속 인수의향서를 접수한 뒤 다음 달 29일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에이치앤티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정 사장이 PC산업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니다.

그는 1990년대에 PC를 만들기도 했던 태일정밀에서 일했고 회사 동료들과 함께 에이치앤티의 전신인 엔티씨를 설립해 PC 부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돈이다.

에이치앤티가 삼보컴퓨터를 인수하기 위해 당장 내놓을 수 있는 보유 현금은 300억여원에 불과하다.

인수금액이 1000억원대가 될지 2000억원대가 될지 모르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에이치앤티는 벤처캐피털 등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컨소시엄 참여업체들로부터 1000억여원을 조달키로 했다.

정 사장은 "삼보컴퓨터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업체 중 국내 제조업체는 에이치앤티가 유일하다"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봐도 우리가 인수하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중국 PC 업체나 일본 PC 유통 업체가 인수할 경우 삼보컴퓨터 유통망만 활용할 게 뻔해 국내 생산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삼보컴퓨터 매각 주간사인 삼정KPMG나 채권자들 입장에서 보면 돈을 많이 써내는 업체에 넘기는 게 최선이다.

이 때문인지 시중에는 "외국 법인이 더 많이 입찰에 참여하길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에 대해 정 사장은 "에이치앤티가 한국 제조업체이기 때문에 잘 봐달라는 게 아니다"며 "제안서를 제출한 업체 중에는 단순히 정보를 캐내기 위해 뛰어든 업체도 있고 투자수익만 노리고 참가한 업체도 있다"고 강조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