咸仁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대학가는 요즘 가을학기 개강을 맞아 오가는 발걸음이 부쩍 분주해졌다.

청년실업 부담이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졸업을 코앞에 둔 4학년생들이 스스로를 '사(死)학년'이라 칭하는 현실이나 '(취업)공부할 시간이 없으니 과제를 줄여달라'고 한목소리로 외치는 학생들의 절실한 애원(哀願)을 외면할 수는 없으나,강의실에서 학생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입장에선 해마다 곤혹스러움이 더해가고 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최근 들어 곤혹스러움을 더해가는 건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일찍 입도선매(立稻先賣)의 대상이 된 학생들이 '강의 출석을 할 수 없으니 양해해주시고 성적을 내주십사' 부탁해 올 때이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에 대해 교육부 입장은 명쾌하기만 하여, 졸업을 위해선 출석 일수를 채우고 일정 학점을 이수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음을 교육부인들 모르겠는가.

교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실제로 학생이 취업했다는 소식은 경사임이 분명한데다,해당 직장을 포기할 경우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님을 무시하긴 어렵다.

그러면서도 강의에 출석하지 않은 학생에게 학점을 주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옳은 선택인가 또한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들리는 이야기론 학생들 취업률이 낮은 대학일수록 4학년 1학기 때부터 출석은 눈감아 주고 취업 전선에 확실히 뛰어들 것을 권유하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교육적 명분을 내세워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융통성 없고 비현실적인 고집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결국 '교수 재량'이란 이름으로 졸업 전 취직된 학생들의 경우 출석은 봐주되 성적 산출 근거는 확보해야 하기에 시험과 과제물 제출을 요구하는 선에서 현실과 타협하긴 하지만,그 결과는 언제나 학생에게도 교수에게도 만족스럽지 않다.

교수는 교수대로 비교육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자괴감이 들고,학생은 학생대로 마지막 학기 낮은 학점을 감수한 것에 대해 불만스럽기만 하다.

여기서 상식적 차원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대학의 학사일정을 익히 알고 있는 기업에서 우수한 인재를 미리 확보하여 대학이 못다한 현장교육을 실시한다는 명분 하에 학생의 최소한의 권리이자 의무를 포기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사회생활에 뛰어든 학생들 다수가 상당한 아쉬움을 표하고 있음을 우리 모두 간과해선 안될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의 교육이란 시장 자본주의의 요구에 대한 반응"이란 비판적 교육학자들의 주장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최근 대학은 취업에 올인하고 있는 학생 고객의 눈높이와 만족도를 고려하여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 서비스 중엔 철저한 학점 관리를 위한 '재수강 제도'에 '학점 포기제'까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예전처럼 '쌍권총'(F학점을 지칭하는 표현)을 자랑하고 학사경고를 대범하게 받아들였던 것을 대학생의 특권이자 낭만으로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20대 초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외치고 부단한 시행착오를 통해 좌절하지 않는 용기를 배워야할 시기에, 'A-'냐 'B+'냐에 희비가 갈리고 학점관리에 연연해하는 현실만큼은 안타깝기만 하다.

현재 기업에서 일차적 스크리닝 지표로 활용하고 있는 양(量)적 지표(학벌,학점,공인 영어점수,각종 자격증 등)들은 인재 충원에 소요되는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편의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 같다.

대학교육 경쟁력 확보의 한 축은 기업과 대학의 유기적(有機的) 연계를 통한 노력으로 구성됨이 분명할진대 기업의 인재 충원 방식에 있어서도 '기본이 탄탄한,타인을 배려하는,잠재력이 풍부한,성숙한 품성을 갖춘' 등의 교육적 가치가 충분히 통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