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로라도 한때는 기술 지향적인 이미지가 강한 회사였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앞서도 소비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바를 제공하지 못하면 외면당하는 법입니다.

모토로라가 소비자의 눈길을 다시 사로잡은 건 디자인 혁신을 통해서였죠."

최근 기세가 등등한 글로벌 2위 휴대폰 업체 미국 모토로라의 한국 법인인 모토로라코리아 길현창 사장.지난해 7월 그가 한국 법인의 '수장'을 맡은 이래 모토로라엔 안팎으로 경사가 많았다.

2004년 여름 모토로라가 야심차게 내놓은 슬림폰 '레이저(Razr)'가 2년 만에 5000만대 이상 팔리며 휴대폰 역사의 한획을 그었고,한국 시장에서도 1년여만에 65만대가량 판매됐다.

덕분에 모토로라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10년 만에 다시 20%대를 넘어섰다.

길 사장은 "모토로라는 레이저의 성공으로 부활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레이저의 탄생은 모토로라 내부의 변혁으로 인해 가능했던 것"이라며 "2004년 초 에드 잰더 회장이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이래 모토로라는 관료주의를 허물고 조직력을 강화시키는 등 효율적인 경영을 하는 회사로 거듭났다"고 말했다.

사실 모토로라는 1996년 최초의 폴더형 휴대폰인 '스타택(StarTAC)'을 내놓은 이래 이렇다 할 히트 모델을 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레이저는 스타택의 계보를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대다수 휴대폰이 '뚱뚱'했던 그 무렵 두께 14.4~14.5mm에 불과한 레이저는 세계적으로 '슬림폰 열풍'을 몰고 왔고 패션의 상징(icon)으로 자리매김했다.

길 사장은 "당시 최고로 얇은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안테나를 단말기 위쪽이 아닌 아래쪽에 장착하는 방법으로 부피를 줄이는 등 갖가지 시도를 거쳐야 했다"며 "신선한 아이디어를 통해 고정된 틀을 깨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의 노력이 좋은 결과물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이저는 모토로라에 '22%대의 세계 시장점유율,11%대의 영업이익률'이라는 실적(2006년 2분기 기준)을 안겨줬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모토로라의 점유율이 10%대 중반을 밑돌며 삼성전자 등 경쟁업체와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였던 점을 감안하면 놀랄 만한 호전이다.

더구나 레이저를 계기로 모토로라는 차별된 디자인 경쟁력을 인정받게 됐다.

길 사장은 "모토로라는 레이저를 통해 디자인 정체성을 공고히 하게 됐다는 점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며 "앞으로는 유비쿼터스 시대에 맞는 디자인 혁신을 거듭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의 트렌드를 마냥 따르기만 한다면 결코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곱씹어야 할 교훈"이라며 "소비자를 감동시키려면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찾아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