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LG전자가 '국민브랜드'로까지 도약한 러시아 시장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두 회사는 러시아 정부의 우회수입 차단으로 인한 '세금폭탄'과 유럽 일본 업체들의 시장 재탈환 공세 강화로 올 들어 매출이 크게 줄어드는 등 위상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 상반기 러시아서 사상 최악의 실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반기 37%의 매출신장률을 기록한 삼성전자는 러시아 진출 이후 처음으로 한자릿수 성장률에 그쳤다.

LG전자는 이보다 더해 올 상반기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이후 연 평균 50%의 고성장률을 기록해온 두 회사의 질주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다.


우회수입 차단이 치명타

러시아 정부의 전면적 우회수입 차단이 매출 감소의 직접적 원인이다.

러시아에서 유통되는 전자제품 중 우회수입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85% 정도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업체들은 꾸준히 우회수입 비중을 줄여왔으나 여전히 비중이 30∼40%에 달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정부가 우회수입을 전면 차단,관세를 부과하면서 현지 전자제품 가격이 15∼20%씩 상승했다.

심지어 통관절차 차질로 공급마저 제때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가격상승과 공급차질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매출이 타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삼성전자의 경우 올 상반기 러시아 내 매출이 12억달러로 올 매출 목표 33억달러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상반기에 37%의 신장률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디지털가전 비중이 높은 LG전자의 매출 타격은 더 심각하다.

러시아 매출 비중이 90%에 달하는 구 소련 독립국가연합(CIS)지역의 올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상반기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잠정집계 됐다.

LG전자 내부에서조차 올해 러시아에서 마이너스 신장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블루오션서 레드오션으로

90년대 후반 이후 러시아 시장서 철수했던 유럽과 일본업체들이 오일달러를 노리고 시장공략에 나서고 있는 것도 국내 업체들에는 악재다.

1998년 러시아 국가부도 사태 당시 일본 등 많은 외국기업들이 철수하는 와중에도 현지에 남아있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러시아 정부 선정 국민브랜드 20개 중 10개를 휩쓸 정도로 현지에서 막강한 위상을 자랑해왔다.

그러나 최근 유럽과 일본 업체들이 속속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고 시장 재공략에 나서면서 국내 업체들이 새로운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2004년 말 세계최대 가전업체인 스웨덴의 일레트로룩스의 현지 가전공장 가동을 시작으로 메를로니(이탈리아),베스텔(터키),보시·지멘스(독일) 등이 현재 러시아에 가전공장을 짓고 있다.

90년대 말 철수했던 소니,도시바 등 일본 업체들도 새롭게 법인을 설립한 후 엔화 경쟁력을 앞세워 공격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국내업체들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으나 과거와 같은 위상을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LG전자는 9월부터 루자공장을 본격 가동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휴대폰을 비롯 전략제품의 정상통관 전환을 마친 데 이어 현지 가전공장 설립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현지의 한 국내 전자업체 관계자는 "러시아 정부가 우회수입 전면차단에 나서면서 일대 혼란이 일고 있다"며 "이로 인한 국내 전자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된 데다 업체 간 경쟁까지 격화되고 있어 러시아에서 과거와 같은 고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