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죤의 역사는 '우리나라엔 없는 것'에 대한 도전의 역사다.

빨래에 비누를 묻혀 두들겨 세탁하는 것이 일반적이던 1978년에 국내 첫 섬유유연제 '피죤'을 내놨다.

1990년엔 보디클렌저 '마프러스'로 미개척지에 뛰어들었다.

몸을 씻는 데는 사각의 고형비누 하나면 충분하던 시절이었다.

작년에는 액체세제 '액츠'로 세탁 세제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1년 만에 전체 세탁세제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8%까지 끌어올려,온통 가루 세제가 장악하고 있는 시장을 조만간 '가루' 낼 태세다.



시장을 '만들어서' 선점한다

이처럼 피죤이 걸어 온 길은 '블루오션 전략'의 표본이라고 할 만하다.

P&G,옥시레킷벤키저 등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과 LG생활건강 등 대기업의 틈바구니에서 전문기업인 피죤이 살아남은 것도 이 때문이다.

"남들이 하는 것은 안 한다"는 게 이윤재 피죤 회장의 지론.섬유유연제 '피죤'이 처음 세상에 나왔던 1978년 한국 가정의 세탁기 보급률은 10%에도 못 미쳤다.

이렇다보니 섬유유연제는커녕 세탁 세제를 쓰는 가정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당시 이 회장은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점점 나아지고 있어 조만간 섬유유연제가 가정의 필수품이 될 것"이라며 성공을 자신했다.

1980년대로 넘어가자 이 회장의 말대로 세탁기가 필수 혼수품 목록에 들었다.

피죤이 나온 지 10년 만에 섬유유연제 시장은 약 200억원 규모로 커졌다.

눈치만 보던 경쟁사들도 섬유유연제 시장 쟁탈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피죤은 시장을 선점하는 것만큼 지키는 것에도 '고수'였다.

'빨래엔 피죤하세요'라는 광고 카피로 고유명사인 피죤을 '섬유유연제'라는 뜻을 가진 일반명사로 만들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무엇무엇 하다(엑스캔버스하다 등)'는 카피의 원조가 바로 피죤인 것.소비자들은 경쟁사들의 광고를 보고 와도 실제 매장에서는 피죤을 집어들기 일쑤였다.

끝나지 않은 도전의 역사

1987년 피죤의 섬유유연제 시장점유율은 80%대였다.

그후 매년 조금씩 점유율이 줄었지만 아직도 50%선을 지키고 있다.

김석원 피죤 마케팅실장은 "피죤이 처음 나올 당시 한국의 가구수는 700만 정도였지만,현재는 1600만가구에 육박한다"며 "점유율이 줄었어도 피죤의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섬유유연제 시장에서의 경쟁이 점점 심해져 국내시장에만 의존해 회사를 성장시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피죤은 중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 회장은 "현재 중국 가정의 세탁기 보급률이 1978년 당시 한국의 그것과 비슷하다"며 "지금이 중국 시장을 공략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피죤은 중국 톈진에 기존 공장보다 10배나 규모가 큰 제2공장을 250억원을 들여 지난달 6일 착공했다.

하지만 중국의 세탁기 보급률이 1970년대 후반의 한국과 비슷하다고는 해도 다국적 기업과 현지 기업이 20여곳이나 경쟁하고 있어 성공을 장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피죤은 이에 따라 고가 프리미엄 전략과 철저하게 현지화된 제품으로 승부하고 있다.

피죤은 중국에서 경쟁제품의 1.5배 가격에 팔리고 있다.

현지화된 제품 개발을 위해 중국 현지에 제일기획과 공동으로 구성한 태스크포스팀을 가동,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향,듣기에 어감이 좋은 브랜드명,섬유유연제 구매패턴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해외 시장을 개척함과 동시에 국내 시장에서는 '액체 상품 전문기업'으로 자리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회사 모토를 아예 '리퀴드 사이언스'로 정할 정도.이를 위해 연구·개발에 매년 매출액의 10%(약 120억원)를 쏟아붓고 있다.

이제는 '열린 기업'으로

"피죤은 28년간 버텨온 한국의 대표적인 강소기업이지만,아직까지 대기업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창업주가 지키는 경영에만 안주하는 데다 외부투자 유치에도 소극적이기 때문"이라는 게 기업 분석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기업 공개를 꺼리다 보니 외부 투자를 성장의 지렛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실제 피죤 주식의 79.03%는 이 회장과 그 가족들이 보유하고 있다.

4년 전 한번 유가증권시장 상장이 검토된 적이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검토'로 그쳤다.

그래도 변화의 단초는 발견된다.

올해로 전문경영인 10년째를 맞은 김이기 사장의 권한을 최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이 회장의 맏딸인 이주연 관리부문장과 그의 남편 하정훈 사업부문장은 오너 일가지만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고 김 사장을 돕는 데만 힘쓴다.

2~3년 내에 기업 공개도 계획하고 있다.

김 사장은 "아직까지는 회사가 차입 등으로 감당할 수 있는 투자만 했지만,앞으로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며 "현재 210억원인 자본금 규모를 500억~1000억원까지 늘려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