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S의 이혜경 대리(31)의 하루는 여느 동료들과 다르다. 아침 9시에 남편이 출근한 후 다현이(7살)와 다원이(5살)를 동네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후 오후 2시까지 회사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다시 3시쯤 아이들을 데려온다. 그리고 집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공부도 시키는 게 이 대리의 '남다른' 하루일과다.

"큰 아이 때문에 올초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회사 놀이방을 이용하다 나이가 차서 일반 어린이집으로 옮겨야 했는데 식사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고 걱정이 많이 됐어요. 아이도 정서적으로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회사와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었죠." 때마침 이 대리의 사정을 알고 회사에서 먼저 재택근무를 제안했고 그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조건은 내년 3월까지 집에서 근무하되,근무조건과 연봉은 재협상한다는 것. 이렇게 해서 근무시간은 하루 5시간(오전 9시~오후 2시),연봉은 기존 급여의 60% 수준으로 결정됐다.

"너무 좋죠.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정보기술(IT) 분야 특성상 1년만 손을 놓아도 뒤처지는데 경력을 계속 살릴 수 있는 데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가까이서 돌볼 수 있잖아요. 저로서는 120% 만족이에요."

삼성SDS에는 이 대리 외에도 집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또 한 사람 있다.

근무조건과 연봉은 각 부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이런 식으로 2003년 이후 작년까지 4명이 더 재택근무를 했다. 국내에서 재택근무 사례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삼성SDS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탄력근무를 통해 여직원들의 출산·육아를 지원해 온 셈이다.

이 회사의 유연한 근무형태는 이뿐 아니다. 출근준비에다 아이를 보육시설에 데려다 주느라 바쁜 직원들을 위한 시차출퇴근제(출퇴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근무방식),보육원에서의 행사에 참여하는 부모들을 위한 '반월차제도'도 직원들 사이에서 항상 애용되는 탄력근로제도다.

남자 직원들도 아이를 키우겠다며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말이 좋아 '남녀불문'이지 다른 직장에선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나섰다간 '팔불출' 또는 '간이 배 밖에 나왔다'는 얘기를 듣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 회사에선 지난해 3명이 평균 10개월반의 육아휴직을 썼다. "회사에서 업무에 지장이 없는 한 제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별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ERP컨설팅팀 S모씨)는 것.

어떻게 이런 선진적인 탄력근무제가 일찍부터 시행될 수 있었을까. 민응기 인사팀장은 "IT 회사는 업종 특성상 여성들의 섬세함과 창의성,지구력이 많이 필요하다"며 "능력있는 여성들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출산·육아 친화경영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1999년 이후 벤처바람이 불었을 때,2002년 IT산업이 찬바람을 맞았을 때 인력이 대거 회사를 빠져나갔다.

회사는 부랴부랴 조직진단을 받았다. 당시 지적된 사항이 우수 여성인력을 유치하고 여성친화적 경영을 펴라는 것이었다.

2003년 김인 사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여성 채용을 급격히 늘렸고,재택근무제 시차근무제 육아휴직제 등 각종 출산·육아 친화경영이 본격 시행됐다.

이런 출산·육아 친화경영은 현 경영진의 경영효율화 노력과 시너지 효과를 이루면서 2002년 주춤했던 경영실적을 다시 '상향 곡선'으로 반전시켰다. 김 사장은 "글로벌 톱 10으로 진입하려면 여성인력의 적극적인 활용과 출산·육아 친화경영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