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한 번 맡아봐요."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LG상사 사장실.금병주 사장이 흑갈색 액체가 든 플라스틱 용기를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내밀었다.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액체는 다름아닌 카자흐스탄산 원유였다.

지난달 현지 아다(ADA)광구를 방문한 그가 수도 알마티에서 비행기로 2시간30분,다시 비포장 도로를 5시간 달려 가져온 '보물'이다.

LG상사가 공을 들여온 중앙아시아 자원개발 사업의 첫 결실이기도 하다.


취임 이후 "물건 사고 파는 일로는 더 이상 종합상사의 미래가 없다"면서 '자원개발,산업용 원자재 전문상사'라는 비전을 내걸았던 금 사장.그가 국내 종합상사가 나아갈 길을 교과서처럼 보여주고 있다.

'상사맨' 특유의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자원개발 및 플랜트 건설 등의 사업권을 따낸 뒤 국내 기업들과 결실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금 사장은 특히 이들 사업의 지분에도 직접 투자,중장기적인 미래 수익도 창출해 내고 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는 자원개발 및 석유화학 플랜트 분야에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레드오션'으로 통해온 곳.

그러나 LG상사는 이들 지역에서 잇따라 대박을 터트리며 "늦은 게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를 잠재우고 있다.

우선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선 광구를 연이어 따내 업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LG상사는 시험생산에 성공한 아다광구에 이어 최근 4억~5억배럴(추정매장량)규모의 유망 광구 1곳을 추가로 확보했다.

아다광구에선 10월까지 3개의 탐사정을 더 뚫어 정확한 매장량을 확인할 예정이다.

금 사장은 "석유메이저들의 전쟁터'가 된 카자흐스탄에서 신규 광구를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늦었지만 그래도 2∼3개 정도는 (광구를) 따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다광구에선 하루 2만배럴 정도 생산하면 대성공이고 3000배럴만 돼도 괜찮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관심은 카자흐스탄에만 머물지 않고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금 사장은 "최근 자원개발 붐이 일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도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며 카자흐스탄을 거점으로 중앙아시아 시장 공략을 확대할 뜻을 내비쳤다.

중동에서는 오만에 이어 예멘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으로 활동무대를 넓히고 있다.

LG상사는 최근 생산을 시작한 폴리프로필렌,에틸렌디크로라이드(PVC원료),아로마틱스(BTX원료) 플랜트 등 약 16억달러(MOU체결 포함)의 석유화학 플랜트 사업을 오만에서 수주한 바 있다.

금 사장은 "오만에서의 수주 경험이 주변국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예멘 정유공장(4억달러 규모),쿠웨이트 EPS플랜트(스티로폼·1억달러),아부다비 가스플랜트 등을 곧 수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 사장은 이제 시선을 '검은 대륙' 아프리카로 돌리고 있다.

이를 위해 LG상사는 다음 달 알제리에 지사를 낸다.

이미 직원들이 현지에 수개월간 머물며 자원개발 시장의 틈새를 파고 들 준비작업을 마쳤다.

금 사장은 "중동 중앙아시아 등을 주로 다니다 보니 다른 지역 직원들이 섭섭해하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돈이 되는 곳이 거기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LG상사 사무실엔 '자원 개발 및 산업재 유통 전문상사,2008년 3000억원(경상이익) 봉우리를 향하여'라는 큼직한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금 사장과 LG상사가 이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 주목된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