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자인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10여년간 전국을 돌며 엮어낸 '조선의 문화공간'(전4권,휴머니스트).2050페이지에 달하는 이 시리즈는 500년 세월을 넘나드는 옛선비와 우리 땅의 종합문화사라 할 만하다.

그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서울대 규장각 등을 뒤져 조선시대 고문헌 수백 종을 섭렵하고 그 문화공간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조선 사대부 87명의 전기적 초상을 그려냈다.

가령 성곽이 있던 지금의 대학로 윗쪽 낙산에서는 '나는 정이 있어 알아볼 듯하건만/청산은 옛사람을 기얼해 줄는지'라는 싯귀를 남긴 신광한(신숙주의 손자,대제학)과 '지봉유설'을 쓴 이수광의 정취를 넉넉하게 펼쳐보인다.

책갈피마다 '수려한 자연경관은 선인들이 남긴 글을 통해 더 아름다워지고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은 아름다운 땅에 대한 기억을 면면이 이어지게 하는 매개체라고 믿는' 그의 지론이 오롯하게 되살아난다.

그는 "문화유적지 현장답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옛 글을 통해 옛사람이 사랑한 땅과 삶에 대한 기억의 끈을 이어주기 위해' 썼다고 밝혔지만 여행길 가방에 넣고 다니며 한 구절씩 음미해볼 현장 가이드북으로도 훌륭하다.

사진작가 권태균씨의 살아있는 풍경들이 글읽는 재미를 더한다.

각권 450~540쪽,2만~2만30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