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재계에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 마련,기업인 대사면 등의 당근을 내놓으며 투자와 일자리 확대를 요구하는 이른바 '뉴딜'을 제안한 지난 31일.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여당의 인식 변화가 그나마 다행스럽다면서도 기업과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수준에 대해서는 실망감을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이런 조치들이 '거래(deal)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규제 개혁과 이에 따른 투자 확대 및 일자리 창출은 정부와 기업이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본연의 임무인데 '이것을 해줄테니 저것을 해달라'는 식으로 '흥정'을 하려는 태도가 한심스럽게 느껴진다는 것.

그는 특히 '조만간 구체적인 투자 확대 규모를 발표해 달라'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요구에 대해 "이익단체일 뿐인 경제단체가 회원사들의 경영활동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이 부르면 그룹 총수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선물보따리(투자 확대 계획 등)를 들고 청와대로 향하는 장면을 지켜본 김 의장이 재계가 자신에게도 비슷한 선물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라고까지 했다.

열린우리당의 전향적인 태도에 '희망적'이란 반응을 보인 경제단체들도 '규제개혁,투자확대,일자리창출과 같은 것들이 정치권과 재계가 주고 받을 성질의 것이냐'는 질문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기업들은 규제를 없애면 묶여 있던 투자를 집행하겠다는 것이지 하기 싫은 투자를 억지로 하겠다는 게 아니다"며 "거래라는 단어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현석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규제가 완화되면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얼마 만큼 투자를 확대할 계획인지 조사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상의가 고도의 경영 판단에 해당하는 기업 투자를 강요하거나 독려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털어놨다.

여당이 정부 설득에 성공해 재계와의 약속을 지킨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민생경제를 결국 표와 거래하려는 '정치적 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유창재 산업부 기자 yoocool@hankyung.com